"기습 시위에 경찰 헬기까지 떠" 한밤 한인타운 전쟁터 같았다 [LA 르포]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위가 엿새째로 접어든 11일(현지시간) 오후 9시께. 조용하던 코리아타운에 갑자기 오토바이 엔진의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는 트럼프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와 함께 100여명의 시위대가 코리아타운 중심에 있는 KH마트 앞 도로를 점거했다.
지난 6일 LA에서 강경한 불법 이민자 추방 조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된 이후 한인 거주지에서 시위가 벌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슬아슬한 대치 끝에 시위대가 해산하자 LA경찰은 본지에 “전날부터 시행된 통행금지로 시위대가 산발적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과거 폭동 사태의 기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날 별다른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33년전 1992년 흑인폭동의 트라우마를 가진 한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이날 시위가 발생한 곳은 흑인폭동 당시 한인 자경단이 총을 든 흑인 폭도들에 맞서기 위해 진지를 구축했던 ‘가주 마켓’ 인근이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왔던 제임스 강은 “부모 세대는 모두 흑인폭동의 직접적 피해자이고 나 역시 어린 시절 권총을 들고 가족을 지켰던 어른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이번 시위가 부디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폭동으로 확대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상인들은 이미 이번 상황을 ‘경제적 폭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날 LA의 패션 거리 자바(Jobber) 시장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케이시 박은 격해지는 시위에 “33년 전 흑인폭동도, 코로나 팬데믹도 견뎠는데 지금은 너무 힘이 든다”며 “정말 이번엔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1992년 흑인폭동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당시 내 또래 남자들은 살기 위해 총을 들었고 우리는 월급을 모두 자경단에 기부했다”며 “목숨을 걸고 삶의 터전을 지켰던 흑인폭동 때와 방식은 다르지만 이번 상황은 경제적 피해 측면에선 폭동과 다름없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한인을 재차 타깃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시장 상인은 “흑인폭도들이 과거 코리아타운을 덮쳤던 이유는 당국이 의도적으로 코리아타운 쪽 퇴로만 열어줬기 때문”이라며 “히스패닉 이민자를 겨냥한 이번 조치도 그들의 노동력에 거의 100%를 의존하는 한인 사회를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찾은 앰비언스 어패럴 본사의 철문은 잠겨 있었다. 경호원은 “취재를 거부한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인근에서 물류 작업을 하던 제라도(가명)는 “ICE 요원 40~50명이 최루탄을 쏘며 동료들을 몰아세운 뒤 수갑을 채웠다”며 “이 때문에 시위가 급속하게 격화됐고 이후 해병대까지 동원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기가 민주당 강세지역이지만 한인 상당수는 바이든이 경기 침체를 야기하고 이민자 범죄를 방조한 것에 분노해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며 “그런데 트럼프가 범죄자 소탕이 아니라 인종 사냥을 벌이면서 그를 지지했던 한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소연했다.

그 역시 “트럼프의 장남이 아무 생각 없이 자경단 사진을 올렸겠느냐”며 “한인 사회의 경제적 근간은 아직까지는 자바 시장의 의류업이고, 여기가 무너질 경우 LA의 한인 사회의 경제적 기반이 연쇄적으로 줄줄이 붕괴될 것”이라고 했다.
LA를 지역구를 둔 한국계 하원의원들도 일제히 시위가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만 소속 정당에 따라 해결책은 다소 차이가 났다.

반면 민주당 소속 데이브 민 의원은 “LA와 캘리포니아 경찰은 평화적 시위를 구실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선동자들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특히 현역 해병대를 배치하기로 한 것은 극도로 위험한 결정”이라고 답했다.

다만 “KYCC는 명칭까지 ‘한인’이 아닌 ‘한인타운’으로 변경하고 지역내 40% 인구를 차지하는 히스패닉을 포용하는 노력을 펴왔다”며 “이번 사태로 의류와 요식업 등 한인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끝까지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포용하는 입장을 견지하지 않을 경우 자칫 한인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재차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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