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플 브뤼셀] 정치마비 사태가 불러온 '나비효과'

브뤼셀정부 구성 난항 장기화…간판공사 위기에 치안도 무방비

[와글와플 브뤼셀] 정치마비 사태가 불러온 '나비효과'
브뤼셀정부 구성 난항 장기화…간판공사 위기에 치안도 무방비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 심장부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도로 공사다.
운전하다 보면 곳곳에 개·보수 공사로 가로막힌 도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도심 교통체증 주범으로 꼽힌다.
EU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대외관계청(EEAS) 등 주요 기관이 밀집해 'EU 지구'로 알려진 슈망 로터리 일대는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벨기에 연방정부와 브뤼셀 지방정부는 로터리 일대에 이른바 '민주적 만남의 광장'을 조성하겠다며 합작법인을 세워 2023년 가을부터 대규모 공사에 착수했다. 브뤼셀의 '간판 프로젝트'다.

로터리 중앙에 강철로 된 대형 캐노피를 설치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차선은 줄이고 보행자 전용 구역을 확장할 예정이다.
그러나 워낙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공사 3년째가 되도록 시민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집에서 EU 기자실까지 자동차로 20분이면 가던 출근길은 거의 1시간으로 늘었다.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경찰 통제까지 겹쳐 옴짝달싹 못 하기 일쑤다.
이 일대에 사무실이 있는 한국인 주재원 임모 씨는 "소음이 너무 심해서 업무에 집중이 잘 안될 때가 많다"며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다른 기업 주재원도 "한동안은 사무실 주차장 진입이 아예 불가능했고, 지금은 인도로 아예 바뀌어 보행자 눈치를 보면서 인도를 지나 주차장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정치마비 사태라는 뜻밖의 악재가 겹치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완공 시점도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이후 1년이 넘도록 브뤼셀 지방정부 구성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다. 이에 브뤼셀 임시정부는 심각한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연방 국가인 벨기에는 각 지방정부의 실질적 권한이 막강해 지방정부 부재로 인한 타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급기야 브뤼셀 임시 지방정부가 최근 EU 지도부에 공사 자금을 특별 지원해달라고 읍소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현지 매체 보도가 잇따랐다.
서한은 "브뤼셀의 열악한 예산 상황과 새 지방정부가 완전히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은 추가 자금조달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이번 프로젝트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호소했다.
EU는 이미 이번 사업에 1천700만 유로(약 268억원) 상당의 자금을 지원한 상태로, 추가 지원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지방정부 부재가 치안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브뤼셀에서는 올해 들어 마약 거래 조직간 불화로 추정되는 총격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주벨기에 한국대사관만 하더라도 올해 들어 7차례나 교민들의 신변 안전 유의를 당부하는 재외국민보호 안전공지를 냈다.
그러나 콘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예방대책도, 사후 대응도 제대로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2건의 총격 사건이 발생해 9명이 사망했고, 전체 사건 75％는 용의자가 체포되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도 10여건의 총격 사건이 발생했으나 용의자가 붙잡혔다는 사후 발표는 몇 건 없었다.
현지 브뤼셀타임스는 12일 '정부도 없고 계획도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선거 이후 무정부 사태 장기화로 예산안이 편성되지 않아 브뤼셀 지역의 재정적자 역시 급증했다고 해설했다.
이 매체는 "아무런 조치 없이 20％가량의 재정적자 상태가 지속되면 곳간이 조만간 거덜 날 수도 있다"며 "공무원 급여 지급 및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지고, 불어나는 부채 상환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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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