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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호족의 미학과 폐허의 전설, 미륵대원 터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9세기, 잦은 내전으로 무능해진 신라 왕실은 지방을 통제할 힘을 잃었고 지역의 신흥 세력들이 그 공백을 차지했다. 이들 호족은 소규모 무력 패거리로 지역을 분할 장악했고, 개성의 호족 왕건이 각지의 호족을 규합해 세운 나라가 곧 고려였다. 건국 후 이들은 연고지의 실질적 지배자로 고려 귀족사회의 주체가 되었다.

월악계곡 깊은 곳 ‘미륵대원’의 옛터가 있다. 건물 기초와 돌부처가 잘 정비된 사(寺)지이며, 동편 둔덕 넘어 원(院)터도 함께 남았다. 원이란 교통 거점에 운영했던 일종의 여관으로 절과 원을 동시에 경영해 ‘사원’이 되었다. 이곳은 경북 문경과 하늘재, 충주 수안보와 지릅재가 연결되는 중요한 요지였다. 14세기까지 존속했던 이 사원은 지역의 유력 가문인 충주 유씨가 고려 초에 창건했으리라 추정한다. 왕건의 제 3왕비를 배출해 그 친자가 3대 정종과 4대 광종이 된 최고의 호족이었다.

개울을 따라 배열한 여러 건물을 지나 도달하는 주불전은 2층 전각 터로 온화한 미소의 미륵불이 서 있다. 목조건물들은 모두 불타 없어졌고 석탑과 석등, 돌거북만 남았다. 석축을 쌓아 반(半)석실로 만든 주불전도 기발하고 건물 모양 석등도 독보적이다. 불상의 얼굴은 평면적이며 몸통의 옷주름은 아예 생략했다. 석탑은 정교한 비례보다 돌의 덩어리 감이 강조되었고, 비석 하부인 돌거북은 새끼들을 조각하는 등 해학적이다. 정교하고 우아한 신라의 귀족 미학과는 달리 호방하고 원초적인 호족 특유의 미학이다.

합리적 추론과는 달리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이 절을 세웠다는 설이 전한다. 개울가의 보주탑, 동그란 큰 바윗돌이 온달이 갖고 놀던 공기돌이라고 물증도 제시한다. 또는 신라의 마지막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세웠다고도 한다. 동생 덕주공주도 건너편 월악산에 덕주사를 세웠다니 그럴싸하다. 한국의 폐허로는 드물게 남은 입체적 공간이 후세의 상상력을 자극해 생긴 전설들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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