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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소통카페] 통합을 위한 ‘문답법’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지난 5일 열린 이재명 정부의 첫 국무회의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눈에 띄는 점은 회의 진행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 뒤에 열리는 첫 회의라는 상징성을 돋보이게 하는 정치적 의미보다는 대통령의 회의 진행이 일방적인 지시 위주의 기존 방식과 다른 점이 주목받은 것이다. ‘이재명식 실용 국무회의’ ‘장차관과 문답 계속 주고받아’ ‘일방적 보고·의결 형식 안 따라’ ‘이 대통령, 질문 또 질문…윤 정부 장관들 3시간 40분 진땀’ ‘활발한 토의’가 그 사례다.

첫 국무회의 문답식 진행 신선
좌우 아닌 모두의 대한민국 위해
대통령은 ‘통합의 산파’ 돼야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문답법은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언어 행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게 일반이다. 그러나 문답법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대화 방식으로 지혜를 얻고 합의를 도출하고 집단 지성을 축적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지속적인 문답으로 무지를 자각하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진리는 말이나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술이나 감각적인 판단이 아니라 꾸준한 문답과 논박의 대화를 통해 발견하는 것으로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고 로마·중세·르네상스·근대를 관통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탐구의 시원이 되었고, ‘좋은 말’은 로고스(이성)와 파토스(감정)의 요소만으로는 부족하고 에토스(품성·신뢰)의 요소도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왔다.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의와 윤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언어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고 믿고 교육하는 궤변론의 수사학자 고르기아스나 프로타고라스와 구별되는 이유다.

진정한 문답법이 첫 국무회의의 회의 방식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회의에 확대되기를 바란다. 특히 문답법이 실종된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에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극단적인 팬덤 집단을 제외한 보통 국민은 국회에서 난무하는 비속어, 인신공격, 인격 폄하, 선동, 괴담, 독설, 고함, 삿대질, 야유, 조롱, 비언어 폭력 행위에 진저리친다. 진리는커녕 의견 공유마저 불가능하게 가로막는 위원장 맘대로의 발언권 정지, 마이크 끄기, 증인 퇴장과 같은 겁박이 일상화한 파행 전문 막장 회의에 지쳐서 할 말을 잊은 지도 오래다.

문답법이 작동하지 않으면 의견수렴은 실종되고 일방 지시와 눈치 보기가 횡행하는 영혼 없는 집단이 된다. 문답법 회의의 흉내라도 냈으면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발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발생한 대통령 후보자 교체 시도, 깜깜한 새벽 한 시간 동안 세상을 얕보듯 진행한 새 후보자 신청, 같은 당이라고 할 수 없는 온갖 자중지란이 다 그런 연유다. 비대위원장의 탄식처럼 선거에 진 정당이 이긴 것처럼 행동하고,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를 포함하는 개혁안을 논의하려는 의원 총회를 40분 전에 위원장도 모르게 취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파면당한 후에도 “이기고 돌아왔다”는 망상을 지닌 전 대통령의 심기를 쫓아 정당을 운영해온 고질병의 연장이고, 문답법을 외면해 온 집단의 숙명일 것이다.

여당도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을 함께 거머쥔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그 가공할 힘을 여당의 입맛에 따라 사법부를 이리 자르고 저리 붙이는 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법 앞에 예외 없는 평등’을 위해 공들여 쌓아온 삼권분립의 민주주의를 허무는 짓이다. 사법부는 선출직이 아니므로 선출된 권력이 재단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무지한 억지이다.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고 뒤에서는 제멋대로 하려는 선출직의 관성을 법에 따라 심판하라고 사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근본 틀을 바꾸는 일은 격의 없는 문답법의 공청회를 포함하는 숙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며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대법원이 특정인(이재명 대표)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후에 시작할 일이 아니다.

국민은 물론이고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고, 대한민국만 있을 뿐”이라는 대통령이 바라는 통합은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다. 대통령이 천명한 “민생 우선” “국민 삶의 질 향상” “진짜 대한민국”은 통합의 자양분을 받아야 잘 자랄 수 있다. 진리에 대한 지혜를 주는 문답법을 산모의 출산을 도와 생명의 탄생에 이바지하는 것에 비유하여 산파술이라고 한다. 대통령이라는 낱말을 ‘크게 통합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한 대통령은 ‘크게 통합하는 산파’가 되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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