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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바이오혁명] 성과 없는 연구개발 투자, 문제는 시스템이다

김진수 KAIST 교수
제21대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과학기술 분야에도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수년간 이공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다.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카르텔 청산’을 명분으로 5조원이나 갑작스럽게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수의 연구자가 오랫동안 수행해 온 과제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대학과 연구소·기업에서 수많은 연구직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에 대해 학계와 산업계에서 강한 비판과 반발이 이어졌고,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삭감한 예산을 1년 만에 급히 복구했다. 그러나 원래의 예산 구조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5조원 규모의 새로운 대형 국책사업들을 졸속으로 만들어 추진하는 것이어서 또 다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향후 연구개발 예산 배정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 R&D 과제 선정, 집행 방식
기획·로비 능한 연구자가 차지
논문 질·양 종합해 선발 가능
과제 아니라 연구자에 투자해야

R&D 투자는 막대한데 성과는 부진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R&D 정상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데, 이 비율은 세계에서 둘째로 높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투자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제는 단순히 투자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투자의 효율성과 성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크게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 두 가지 방식으로 집행된다. 두 방식 모두 특정 과제를 선정해 예산을 투입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에 따른 한계와 문제가 있다. 필자는 이 같은 기존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하향식은 정부가 연구 주제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공모하고 이에 맞추어 연구자들이 연구과제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지정해서 연구비를 투자해,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고 지식재산과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하향식 사업의 주된 목적이다. 현재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대부분이 이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공무원들이 모든 기술 분야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수한 과제를 선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결국, 투자 대상을 정하기 위해서는 민간 전문가들의 자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 연구비를 확보해야 하는 연구자들은 본업인 연구보다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로비 활동과 그 결과 소집되는 각종 기획회의에 참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가 연구비를 받지 못하고, 기획과 로비에 능한 연구자가 연구비를 확보하지만 실질적 성과는 미흡한, 비효율적 구조가 형성된다.

박경민 기자
상향식은 이와 반대로,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 주제를 제안하면 정부가 전문가 심사를 통해 과제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새로운 혁신의 대부분은 이 방식에서 나온다. 많은 연구자가 이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많다. 우선, 다양한 분야의 과제를 제대로 심사할 수 있는 전문가 풀(pool)이 부족하다. 심사에서 탈락한 연구자들은 심사위원의 전문성이 부족해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과제 제안서를 작성하고 이를 심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도 연구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정작 연구비를 받아 연구에 착수하게 되면 과제 제안서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1년 전에는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이제는 쓸모없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연구비를 받은 후에는 매년 연차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 또한 행정적 부담이 된다. 결국 연구에 전념하기보다 과제 제안서와 연차보고서를 쓰는 한편 동료 과학자의 제안서를 평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발표 논문으로 우수 연구자 가리면 돼
하향식과 상향식 모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과제가 아니라 연구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연구자에게 과제 제안서를 요구하지 않고, 지난 3~5년 동안 발표한 논문 목록만 제출받아 이를 평가해 우수한 연구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가장 보편적인 논문 평가지표는 피인용 횟수다. 논문이 우수할수록 다른 논문에 피인용이 많이 된다. 총 피인용 수와 논문당 평균 피인용 수를 함께 고려하면 연구의 양과 질을 종합해서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논문이 인용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 선행지표로 학술지의 평균 피인용 수(임팩트 팩터)를 함께 활용할 수도 있다. 정량평가 결과를 정성평가로 보완할 수도 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효율성이다. 최근에 우수한 연구성과를 낸 연구자가 향후에도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연구비를 받은 후에도 성과가 미흡하면 일정 기간 후 지원이 중단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과제 제안서와 연차보고서 작성, 타 과제 심사 등 행정 부담이 줄어들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향식에서는 기획에 참여하지 못해 불이익을 받았다는 비판이 있고, 상향식에서는 심사위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탈락했다는 불만이 있다. 최근 연구성과를 평가해서 연구자를 지원하면 이러한 논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정부·납세자·연구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으면서 하향식, 상향식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3의 트랙이 될 수 있다.

김진수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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