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 70% 본국 보내는 외노자들…"담배가 유일한 사치" [조선도시 두얼굴上]
조선업이 주력 산업인 경남 거제·울산 같은 ‘조선 도시’에선 업계 호황이 지역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수년 새 증가한 외국인 근로자가 돈을 안 써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단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사정도 있다. 본국 가족 부양을 위해 월급의 상당액을 해외로 송금해야 해서다. 빚도 갚아야 한다. 국내 정착을 꿈꾼다면 잔돈까지도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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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70% 해외 송금…한 달 생활비 70만원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에서 만난 쏘꼬꼬한(38·미얀마)은 월평균 240만원을 번다. 거제 한 대형 조선소 사내협력사에서 그는 주 6일, 하루 8~10시간씩 용접을 한다. 내국인 근로자가 여름·겨울 휴가를 떠날 때도 쏘꼬꼬한은 조선소에 출근 도장을 찍어 돈을 번다. 이 중 170만원(71%)은 꼬박꼬박 미얀마로 보낸다. 이 돈이 아내와 9살·2살 두 아들, 노모(老母)의 생계비다.
쏘꼬꼬한은 남은 7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국내 1인 가구 월평균 소비 지출액 163만원의 절반이 안 되는 수준이다. 이 돈은 식비 40만원, 담배·생필품 15만원, 방세 10만원, 통신비·관리비(난방 등) 5만원 등에 쓴다. 외식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점심은 회사에서, 아침·저녁은 투룸 숙소에서 함께 사는 미얀마 동료 2명과 직접 요리해 먹는다. 인근 아시아 마트에서 사온 값싼 식재료를 활용해서다. 쏘꼬꼬한은 “밖에서 사 먹으면 비싸요. 돈 모자라”라고 했다.
미얀마 동료 2명과 함께 사는 투룸 숙소는 보증금 500만원·월세 65만원이지만, 회사가 보증금과 매달 35만원을 지원해준 덕에 그나마 부담이 덜한 편이다. 하루 1갑 이상 태우는 담배가 한국 생활의 유일한 사치다. 이 생활비마저 아껴 쏘꼬꼬한은 두 아들에게 선물할 옷 두 벌을 사 책상 위에 고이 모셔뒀다.
거제 다른 대형 조선소 용접공 응우옌 뜩 안(38·베트남)과 도장공 응우엔 반즈(42·베트남)는 280만원 중 200만~230만원(71~82%)을 가족 생계비로 본국에 보낸다. 기숙사비(10만원)와 식대(23만원)는 공제된 급여이지만, E-7(전문인력) 비자로 가족 초청이 가능한 둘은 한국에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 현재 50만~80만원의 생활비마저 아껴 저축 중이다.
이를 위해 기숙사에 살면서 평일엔 세끼 모두 회사 밥만 먹는다. 조선소 2년 차 반즈는 “아내와 11살·9살 두 아들과 한국에서 사는 게 가장 큰 꿈”이라 말했다. 올 1월부터 일한 뜩 안은 “샴푸, 비누 등 생필품 살 때 아니면 평일에 일 마치고 기숙사 밖으로 잘 안 나간다”며 “아들(13)에겐 한국어 공부도 시키고 있는데, 나중에 한국 집 사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모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가 ‘짠내나는 한국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도 있다. 대부분 큰 빚을 지고 입국해서다. 해외 현지 인력 송출·중개업체 등 민간 브로커에게 선지급하는 입국 수수료다.
거제대 사회복지학과 황수연 교수 연구팀이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용역을 받아 지난해 거제 조선업 이주 노동자 466명(조선업 410명·88%)을 상대로 조사한 ‘거제시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 ‘입국 수수료’로 901만~1000만원 이상을 냈다는 응답이 24%(112명)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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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000만원 넘게 빚진 외노자…빚 갚기도 버거워”
여기에 한국어·직무 교육, 비자 행정 처리, 항공료 등에도 별도 비용이 들어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는 “수수료 7500달러(원화 약 1000만원)에 교육비 등으로 월 200달러씩 6개월로 1200달러(약 160만원)를 지불하고 왔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외국인 근로자는 “갚을 돈이 1500만원”이라고 말했고, 40대 외국인 근로자도 “1000만~2000만원을 내고 온다”고 귀띔했다.
이런 탓에 입국 초기 외국인 근로자는 빚 갚느라 바쁘다. 황 교수팀 조사에 따르면 거제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 평균 월급은 266만원으로, 최대 2000만원의 빚을 갚으려면 매달 100만원씩 1년 10개월이 걸린다.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가 가진 E-7(전문인력)·E-9(비전문취업)의 법적 체류 기간 절반을 빚 갚느라 바쁜 셈이다. E-9 비자는 최대 4년 10개월(기본 3년·연장 1년 10개월)이고, E-7 비자는 고용 회사랑 계약이 돼 있으면 상한 없이 연장할 수 있지만, 원칙상 최초 체류 기간은 3년이다.
황 교수는 “애초 2000만원 빚이 있는 상태에서 출발하니 돈을 쓸 수 없는 구조”라며 “우리가 필요해서 이주 노동자를 부르는 만큼, 보다 안전하게 돈을 벌고 나아가 국내에 정주할 수 있도록 입국 초기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성욱.안대훈.김민주.김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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