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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돈 70% 본국 보내는 외노자들…"담배가 유일한 사치" [조선도시 두얼굴上]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투룸 숙소에서 대형 조선소 사내협력사 소속 외국인 근로자 쏘꼬꼬한(38·미얀마·사진 왼쪽)과 그의 동료가 직접 구입한 돼지 족발 덩어리를 냄비에 삶고, 밥솥에 밥을 지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조선업이 주력 산업인 경남 거제·울산 같은 ‘조선 도시’에선 업계 호황이 지역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수년 새 증가한 외국인 근로자가 돈을 안 써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단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사정도 있다. 본국 가족 부양을 위해 월급의 상당액을 해외로 송금해야 해서다. 빚도 갚아야 한다. 국내 정착을 꿈꾼다면 잔돈까지도 아껴야 한다.



월급 70% 해외 송금…한 달 생활비 70만원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에서 만난 쏘꼬꼬한(38·미얀마)은 월평균 240만원을 번다. 거제 한 대형 조선소 사내협력사에서 그는 주 6일, 하루 8~10시간씩 용접을 한다. 내국인 근로자가 여름·겨울 휴가를 떠날 때도 쏘꼬꼬한은 조선소에 출근 도장을 찍어 돈을 번다. 이 중 170만원(71%)은 꼬박꼬박 미얀마로 보낸다. 이 돈이 아내와 9살·2살 두 아들, 노모(老母)의 생계비다.

경남 거제시 한 대형 조선소 사내협력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쏘꼬꼬한(38·미얀마)이 같은 국적의 동료 2명과 함께 하는 투룸 숙소 내부. 큰 방에 2명, 작은 방에 1명이 산다. 지난 5일 모습. 안대훈 기자
쏘꼬꼬한은 남은 7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국내 1인 가구 월평균 소비 지출액 163만원의 절반이 안 되는 수준이다. 이 돈은 식비 40만원, 담배·생필품 15만원, 방세 10만원, 통신비·관리비(난방 등) 5만원 등에 쓴다. 외식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점심은 회사에서, 아침·저녁은 투룸 숙소에서 함께 사는 미얀마 동료 2명과 직접 요리해 먹는다. 인근 아시아 마트에서 사온 값싼 식재료를 활용해서다. 쏘꼬꼬한은 “밖에서 사 먹으면 비싸요. 돈 모자라”라고 했다.

미얀마 동료 2명과 함께 사는 투룸 숙소는 보증금 500만원·월세 65만원이지만, 회사가 보증금과 매달 35만원을 지원해준 덕에 그나마 부담이 덜한 편이다. 하루 1갑 이상 태우는 담배가 한국 생활의 유일한 사치다. 이 생활비마저 아껴 쏘꼬꼬한은 두 아들에게 선물할 옷 두 벌을 사 책상 위에 고이 모셔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가족 데려오려면 더 아껴야"

거제 다른 대형 조선소 용접공 응우옌 뜩 안(38·베트남)과 도장공 응우엔 반즈(42·베트남)는 280만원 중 200만~230만원(71~82%)을 가족 생계비로 본국에 보낸다. 기숙사비(10만원)와 식대(23만원)는 공제된 급여이지만, E-7(전문인력) 비자로 가족 초청이 가능한 둘은 한국에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 현재 50만~80만원의 생활비마저 아껴 저축 중이다.

지난 3월 경남 거제시 한 대형 조선소 사내협력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쏘꼬꼬한(38·미얀마)이 본국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옷가지와 목욕·화장 용품, 다리미. 안대훈 기자
이를 위해 기숙사에 살면서 평일엔 세끼 모두 회사 밥만 먹는다. 조선소 2년 차 반즈는 “아내와 11살·9살 두 아들과 한국에서 사는 게 가장 큰 꿈”이라 말했다. 올 1월부터 일한 뜩 안은 “샴푸, 비누 등 생필품 살 때 아니면 평일에 일 마치고 기숙사 밖으로 잘 안 나간다”며 “아들(13)에겐 한국어 공부도 시키고 있는데, 나중에 한국 집 사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모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가 ‘짠내나는 한국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도 있다. 대부분 큰 빚을 지고 입국해서다. 해외 현지 인력 송출·중개업체 등 민간 브로커에게 선지급하는 입국 수수료다.

거제대 사회복지학과 황수연 교수 연구팀이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용역을 받아 지난해 거제 조선업 이주 노동자 466명(조선업 410명·88%)을 상대로 조사한 ‘거제시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 ‘입국 수수료’로 901만~1000만원 이상을 냈다는 응답이 24%(112명)로 가장 많았다.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조선소(거제사업장) 외국인 근로자가 거주하는 사내기숙사 내부 모습. 2층 침대가 놓인 2인1실 방이다. 사진 한화오션


“이미 1000만원 넘게 빚진 외노자…빚 갚기도 버거워”

여기에 한국어·직무 교육, 비자 행정 처리, 항공료 등에도 별도 비용이 들어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는 “수수료 7500달러(원화 약 1000만원)에 교육비 등으로 월 200달러씩 6개월로 1200달러(약 160만원)를 지불하고 왔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외국인 근로자는 “갚을 돈이 1500만원”이라고 말했고, 40대 외국인 근로자도 “1000만~2000만원을 내고 온다”고 귀띔했다.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다이소 매장에서 일과를 마친 삼성중공업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들이 줄을 서 있다. 값싼 생필품과 해외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물품을 사기 위해서다. 송봉근 기자
이런 탓에 입국 초기 외국인 근로자는 빚 갚느라 바쁘다. 황 교수팀 조사에 따르면 거제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 평균 월급은 266만원으로, 최대 2000만원의 빚을 갚으려면 매달 100만원씩 1년 10개월이 걸린다.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가 가진 E-7(전문인력)·E-9(비전문취업)의 법적 체류 기간 절반을 빚 갚느라 바쁜 셈이다. E-9 비자는 최대 4년 10개월(기본 3년·연장 1년 10개월)이고, E-7 비자는 고용 회사랑 계약이 돼 있으면 상한 없이 연장할 수 있지만, 원칙상 최초 체류 기간은 3년이다.

황 교수는 “애초 2000만원 빚이 있는 상태에서 출발하니 돈을 쓸 수 없는 구조”라며 “우리가 필요해서 이주 노동자를 부르는 만큼, 보다 안전하게 돈을 벌고 나아가 국내에 정주할 수 있도록 입국 초기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성욱.안대훈.김민주.김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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