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고릴라 할아버지’와 떠나는 신비한 그림책 여행
“좋은 그림책일수록 글과 그림 사이에 매력적인 빈틈이 있고, 그 빈틈을 독자의 상상력이 채우며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이 과정이야말로 책 읽기의 진짜 즐거움이며, 상상력의 힘을 키우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앤서니 브라운의 상상력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요. 그는 반려견과의 산책길, 가족과의 추억 등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를 풀어내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앤서니 브라운 이야기에 매료되고 공감해요.
1976년 첫 작품 『거울 속으로(Through the Magic Mirror)』 발표 이후 2024년에 출간한 신작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Big Gorilla: A Book of Opposites)』까지 57권의 책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쓴 그는 가족, 전래동화, 인간애, 행복, 상상과 꿈, 사회 문제 등 모든 세대가 두루 공감할 수 있는 광범위한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죠. 앤서니 브라운의 이런 기발함을 볼 수 있는 전시 앤서니 브라운전: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9월 28일까지 열려요. 그의 상상 가득한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프롤로그부터 '도전은 계속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글과 그림의 커뮤니케이션', '우리 할아버지, 우리 가족', '새로운 시대의 시작', '특별 초청 작가, 한나 바르톨린', '옛날 옛적 책 속에서', '고릴라 할아버지'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총 9개의 섹션으로 구성됐어요.
과거 맨체스터 왕립 병원에서 수술 부위와 해부도를 그리고 갤러리에서 판매용 연하장을 디자인하는 일을 한 앤서니 브라운은 현재 영국과 한국은 물론 세계가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며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등 권위 있는 아동 문학상은 물론 2021년에는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은 작가입니다. 이토록 그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재치 있는 유머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인데요.

이 섹션에 전시된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는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흰얼굴 카푸친원숭이 등 다양한 영장류가 등장하는 반대말 그림책입니다. 슬픔과 행복, 무거움과 가벼움, 혼자와 함께, 크고 작음처럼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반대말을 주제로, 자신이 깊은 애정을 가진 영장류 친구들의 모습으로 표현했죠.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따듯한 시선도 느껴져요. 털 한 올까지 정성스럽게 그려낸 세밀한 그림과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업 방식은 그가 최근 즐겨 사용하는 표현기법입니다.

다음 섹션인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에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첫 번째 그림책 『거울 속으로』부터 글과 그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고릴라』 그리고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돼지책』 등 1970~80년대 발표한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어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에서 그림은 단순히 글을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헨젤과 그레텔』과 『고릴라』 이후, 글이 설명하지 않는 부분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방식은 그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는데요. 브라운은 종종 의도적으로 그림 속 일부를 여백으로 남겨두며, 독자가 상상력으로 그 빈틈을 채울 수 있도록 하죠. 이러한 여백은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그의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요.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섬세함은 때로는 엉뚱하지만, 종종 전체 서사나 중요한 플롯을 암시하기도 하고요.
세 번째 섹션인 '글과 그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러한 그의 독창적인 작품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섹션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은 『킹콩』인데요. 대학 시절 본 영화 '킹콩'은 브라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고릴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에게 ‘킹콩’은 큰 도전이자 설레는 작업이었어요. 장편 영화를 그림책으로 엮는 일이었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기획하는 것처럼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각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과 글의 조합에 큰 공을 들였죠. 여주인공 '앤 대로우'를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로 그려낸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어지는 섹션 '우리 할아버지, 우리 가족'에는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모았죠. 브라운은 2000년 『우리 아빠』부터 2005년 『우리 엄마』, 2007년 『우리 형』 그리고 2020년에는 딸을 주인공으로 한 『넌 나의 우주야』, 최근에는 개성 넘치는 할아버지들이 등장하는『우리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꾸준히 가족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선보였습니다. 『우리 형』을 제외한 가족 시리즈의 모든 책의 마지막 장면은 '포옹'으로 마무리되는 것 또한 브라운 작품의 특징이죠. 이는 가족애를 넘어 인류애, 나아가 동물도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섹션에서는 아동 문학에 대한 평생 공로를 인정받은 앤서니 브라운이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 이후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1976년 첫 책을 펴낸 이후, 브라운은 약 20년 가까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다듬으며 글과 그림의 균형을 완성해 나갔죠. 그러다 2000년대 이후 배경 속 상징과 숨은 그림을 활용해, 글이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발전시켰고요. 더불어 작품의 소재와 표현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초기에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화로 마무리했으나, 2010년대부터는 수채 물감의 일종인 과슈(gouache)를 사용함으로써 한층 더 밀도 있고 중후한 분위기의 화풍을 구축했죠.
다음으로는 전래동화에 깊은 애정을 가진 앤서니 브라운이 친숙한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한 '옛날 옛적 책 속에서' 섹션이 이어져요. 브라운은 고전 작품의 상징적인 장면과 캐릭터를 작품 속에 숨겨두는 방식 등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해요. 그는 "그림 속 배경에 담긴 디테일을 통해 글이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후 그의 해석 방법은 더 다양해졌죠.

전래동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며 고전에 새로운 생명과 해석을 불어넣었습니다. 유럽의 구전 동화 『세 가지 소원』을 유쾌하게 각색한 『엄청나게 커다란 소원』은 원작의 교훈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더했어요. 반면 『숲속으로』는 어린 시절 무서운 숲길을 걸어갔던 기억을 바탕으로 여러 전래동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결합한 독창적인 이야기이고요. 전시에서는 브라운이 고전의 서사에 시각적 상상력을 더한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만나볼 수 있어요.
앤서니 브라운 책에는 왜 고릴라가 자주 등장할까? 브라운의 작품을 접한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볼 법한 질문이죠. 마지막 섹션인 '고릴라 할아버지'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릴라는 그의 그림책 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로, 때로는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기도 하고, 고릴라와 관련 없는 이야기 속에 '카메오'처럼 슬쩍 등장하죠. 브라운에게 고릴라를 그리는 일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경험이라고 해요. 얼굴의 세밀한 주름과 풍부한 표정, 털의 질감을 묘사하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죠. 특히 고릴라의 눈에서는 사람의 눈처럼 복잡한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섹션에서는 한국에서 '고릴라 할아버지'로 불리는 그가 털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그려낸 영장류의 사실적이고 정교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입니다. 고릴라를 비롯한 영장류에 대한 브라운의 애정과 철학, 그리고 인간과의 깊은 유사성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죠. 아울러 1984년 『겁쟁이 윌리』 출간 이후 30년 넘게 이어져 온 침팬지 윌리(Willy) 시리즈의 대표작들도 함께 만날 수 있어요. 이토록 친숙한 앤서니 브라운 책은 청소년 관객들에게는 아련한 향수와 같은 감동을, 어린이 관객에게는 책으로 만났던 익숙한 장면이 실제 원화로 펼쳐지는 마법과 같은 신비한 경험을 선사할 거예요.

'앤서니 브라운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
기간: 9월 28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15분)
입장료: 어린이·청소년 1만6000원, 성인 2만2000원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15분)
입장료: 어린이·청소년 1만6000원, 성인 2만2000원
이보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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