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점 못하면 도태 ‘더 빨리, 더 많이’ 신제품 내는 빅테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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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업의 생존전략

속도전의 선두엔 엔비디아가 있다. AI 칩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지난해 제품 업그레이드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처음 공개한 AI 칩 ‘블랙웰’을 시작으로 ▶2025년 하반기 ‘블랙웰 울트라’▶2026년 하반기 ‘루빈’ ▶2027년 하반기 ‘루빈 울트라’ ▶2028년 ‘파인만’을 내놓겠단 계획이다. 2020년 ‘암페어’→2022년 ‘호퍼’→2024년 ‘블랙웰’로 이어진 흐름에 비해 신제품 공개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
엔비디아를 바짝 추격 중인 미국 AMD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AI 가속기 ‘MI300’을 공개한 후 올해 ‘MI350’를, 내년에 ‘MI400’ 시리즈를 차례로 공개할 계획이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제품군을 확대하기도 한다. 애플은 지난해 AI 폰 시장에 뛰어들었고, 지난 2월엔 3년 만에 보급형 모델을 내놨다. 하반기에는 초슬림폰을, 내년에는 삼성이 먼저 시작한 폴더블폰 시장 진출도 예고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인 만큼 제품군을 늘려 신규 수요를 끌어내고 샤오미·오포 등 중국 업체도 견제하는 행보다.
다만 리스크도 있다. 엔비디아는 발열 문제로 지난해 9월 예정이었던 블랙웰 GB200 제품의 출시를 두 차례 지연했고, 애플은 예고했던 AI 기능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해 일부 AI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 업계에서는 “빨리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성도를 담보하지 못하면 브랜드 신뢰도가 오히려 깎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메모리 공급사인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속도전의 최전선에 올라타 있다. 엔비디아 AI 칩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로서는 AI 칩 신제품이 자주 나올 수록 HBM 수요가 꾸준히 이어져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HBM 기술 선두에 서 있는 SK하이닉스는 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면서 기술 리더십을 꾸준히 가져갈 수 있어 고객 ‘락인’(lock-in, 가둬두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도 “선도 업체와 협력하는 게 고객(엔비디아)이 리스크를 최소화할 전략이라, 고객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리더(하이닉스)에겐 유리한 환경”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기술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엔비디아의 HBM3E 납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삼성전자는 HBM4에서도 경쟁사에 뒤처진 상황이 됐다.
이종환 교수는 “주기가 빨라지면 1위 기업이 그만큼 대규모 투자를 주도할 수밖에 없어 쫓아가는 기업들은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하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우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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