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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정물은 살아 있다

김성중 소설가
가이 대븐포트의 『스틸라이프』를 읽으며 나 혼자의 분류법으로 이건 ‘언덕 책’에 들어가야겠는데, 라고 생각했다. 일단 언덕까지 올라가야만 높은 산이나 광활한 대지와 같은 풍경이 보이기 마련인데, 그건 평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 언덕 책들은 그 고도에서 보이는 경이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생각에 이 분야 최고의 저자는 발터 벤야민인데, 정물을 지렛대 삼아 자유롭게 움직이는 이 책 또한 독특한 매혹을 발산한다.

‘음식을 구하고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의 그사이에 시간이 있다. 음식이 어딘가에 놓이는 시간이다.’ 시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 이 책은 정물의 기원에서 출발해 ‘탁자 위의 사물들’을 묘파한다.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정물이 변한 것은 사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19세기다. 이제 정물은 사적인 개인을 보여주는 작은 소우주, 취향과 필요를 담고 있는 흔적이자 증거로서 탐정소설을 불러온다. 『여섯 개의 나폴레옹』에서 셜록 홈스는 나폴레옹 흉상만 부수고 다니는 범인을 찾아다니는데 저자가 주목한 것은 흉상, 특히 머리가 강조된 두상이며 그것이 파괴되는 이미지이다.

김지윤 기자
비슷한 파괴가 『어셔가의 몰락』에서도 일어난다. 베네치아의 책, 스페인 기타, 네덜란드 유화물감이 운반되어 온 로드릭 어셔의 서재에는 멜랑콜리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작가는 어셔에게서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읽어내고, 산 채로 매장당한 누이가 돌아온 것을 섬뜩한 에우디리케의 환생으로 해석한다. 어셔의 집이자 두뇌인 저택은 두상이 파괴되듯 번개를 맞아 파괴된다. 이 파괴가 오히려 정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다.

피카소·세잔·고흐·니체·키츠…. 수많은 인물이 자신의 정물을 들고 등장하는 이 책을 넘기다 보면 ‘움직이지 않는 소재’를 가리키는 정물의 의미가 달라진다. 정물이 진동하고, 작동하고, 움직이며, 살아있는 풍부한 느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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