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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워터게이트 사건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1972년 6월 17일 미국 워싱턴 DC, 자정을 넘긴 깊은 밤. 사무실·아파트·호텔로 사용되는 다용도 건물 워터게이트 빌딩의 경비원 프랭크 윌스의 눈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지하주차장에서 여러 사무실로 통하는 복도 출입문에 누군가 테이프로 걸쇠를 눌러 붙여 놓았다. 문을 닫아도 자동으로 잠기지 않게 해놓은 것이다.

침입자의 목적은 짐작 가능했다. 워터게이트에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다섯 명의 침입자를 체포했고 곧 배후가 밝혀졌다. 전 백악관 보좌관 E 하워드 헌트 2세, 그리고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 법률고문인 G 고든 리디가 가택침입죄와 도청죄로 고발당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를 필두로 언론은 집요한 추적을 했고 점차 진실이 드러났다. 여러 전·현직 백악관 보좌관이 차례로 기소되거나 유죄를 인정했다. 73년 7월 16일 전 백악관 직원 알렉산더 버터필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청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고 증언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도 버티던 닉슨은 74년 8월 5일 본인이 도청에 개입돼 있음을 증명하는 테이프를 하원 사법위원회에 제공했다. 결국 사흘 후인 8월 8일 사임을 발표하고 다음날 고별 연설(사진)을 한 뒤 백악관을 떠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72년 대선을 앞두고 터졌다. 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전국 투표에서 60.67%, 선거인단 538명 중 520표를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불법 가택 침입과 도청에 연루돼 있을지 모르며 거짓말로 덮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자 민심도 등을 돌렸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며, 그 어떤 권력도 법을 초월해 군림할 수는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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