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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육부 ‘의과대학 교육혁신 계획’ 졸속 우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의학교육의 본질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성이나 리더십이 뛰어나고 의사소통능력이 탁월하며 의학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더라도 환자를 진료할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은 환자를 직접 봐야만 획득할 수 있다. 표준화 환자를 사용하는 임상수행평가(CPX)든 인공지능(AI)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교육이든 이들은 모두 실제 환자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이걸로는 의학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실제 비행을 해보지 않고 시뮬레이터만 타본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 수 없는 것과 같다.

예산 540억 배정 사업계획 발표
의학교육계 현장 의견 반영 안 돼
열악한 임상학습 여건 개선해야

대전의 한 의과대학 캠퍼스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의학교육의 가장 큰 파행은 뒤떨어진 교육과정, 부실한 건물과 학습 환경, 낡은 교육기자재, 바쁜 교수들의 교육에 관한 관심 부족에 있지 않다. 물론 이것들도 문제지만, 투자하고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수 부족, 교수가 쓸 수 있는 시간 부족, 학생들이 볼 수 있는 환자의 부재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의학교육의 발전은 요원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임상교육의 요체는 철저히 학생들이 환자를 보도록 하는 데 있다. 교수는 우선 학생에게 환자의 의무기록을 학습하도록 하고, 환자가 방문하면 학생이 먼저 환자를 보도록 한다. 학생은 문진과 신체검사를 수행하고 필요하면 검사 지시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결과물을 교수가 살펴보고 피드백한다. 그다음엔 다시 교수가 환자를 보면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고 이를 학생에게 알려준다.

이와 같은 임상학습 경험이 없다면 학생들은 진료하는 법을 배울 길이 없다. 혈압 측정이나 채혈처럼 간단한 술기는 몇 번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된다는 것은 환자로부터 정보를 끌어내 임상 추론을 한 뒤 그 결과로 적절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적정한 교수 숫자와 학생들에게 기꺼이 진료를 허락하겠다는 환자들이다.

불행히도 지금 대한민국 의대 교육환경에서 가장 부재한 것이 바로 이것들이다. 선진국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교수들이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열 명 남짓인데, 현행 의료 시스템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대학병원이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학생 교육을 위해서는 교수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뽑아야 하는데 이러면 병원 경영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의료사고와 법적 분쟁을 두려워하는 의료 환경에서 학생에게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환자부터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분개할 것이다.

최근 교육부는 예산 540억원을 사용하는 ‘의과대학 교육혁신 지원사업 기본계획’이란 것을 내놨다. 현장의 시각으로 보기에 문제가 다분하다. 의과대학 입시를 바꾸고, 학생 정신건강 가이드를 개발하고, 의학교육을 디지털화하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가능해질까. 개념도 불분명한 ‘시민 중심 교육 과정’을 제시하면, 지역사회 밀착형 교육과정을 개발하면, 포트폴리오를 도입하면, 족보를 대신할 문제은행 데이터뱅크를 만들면 의학교육이 발전하고 혁신이 될까. 사실 이런 것들은 본질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들일 뿐이다.

교육부가 진정으로 의학교육을 개선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교수 한 명이 하루에 열 명 내외의 환자를 봐도 대학병원이 문을 닫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환자로 내원하는 시민들이 의료진과 학생을 신뢰하고, 의료인 교육과 미래의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불쑥 꺼내는 바람에 발생한 ‘의정 사태’로 지금 의학교육은 파행을 빚고 있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그 상흔이 치유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하겠다는 교육혁신 계획은 대단히 한가롭고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더군다나 교육부는 이 사업 개발 과정에서 의학교육계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 공개적인 논의에 부친 적도 없어 의정 사태 와중에 졸속으로 만들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자칫 이 사업이 실패로 끝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처럼 소중한 국민 세금을 허공에 날리는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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