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정재훈의 음식과 약] 운전할 때 약 먹어도 될까

중앙일보

2025.06.18 08:1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약 복용 중 운전은 음주 운전만큼 위험할 수 있다. 약물로 인한 교통사고라고 하면 흔히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병원 처방약이나 일반의약품도 위험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약이 운전에 영향을 주는지 운전자들이 잘 모른다는 점이다. 2023년 AXA손해보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운전자 91%가 약물운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75%는 어떤 약물이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히스타민제 성분의 약은 졸음과 판단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사진 pixnio]
특히 환절기에 자주 복용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약이나 종합감기약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들 약에는 증상 완화를 위한 항히스타민제 성분이 들어있는데, 졸음과 판단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위험 수준이 상당하다. 2000년 미국 아이오와 대 연구 결과 항히스타민제 성분인 디펜히드라민을 복용한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의 음주 상태보다 더 심한 운전 능력 저하를 보였다. 동일 성분이 수면유도제에도 들어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 부작용이다. 하지만 졸음이나 진정작용을 일으키는 약은 생각보다 많다. 항불안제·항우울제·당뇨치료제·고혈압치료제·근육이완제·소염진통제 등 다양한 약물이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염진통제는 드물지만 민감한 사람에게 진정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인도메타신이 그런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당뇨약은 저혈당을 유발할 경우 졸음, 진정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흔히 사용하는 지사제(로페라마이드)도 진정작용이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고령자일수록 약 복용 시 운전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복용하는 약 가짓수가 많을수록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운전이나 기계 조작 시 위험이 높아진다. 하지만 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운전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새로운 약을 사용하기 시작하거나 기존 약의 용량을 늘릴 경우에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고혈압약·항우울제와 같은 약은 처음에는 어지럼증·진정부작용으로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대개 1~2주가 지나면 우리 몸이 적응하면서 그런 증상은 사라진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부작용 위험이 다시 증가한다. 알코올 때문에 약의 진정작용이 강화되어 위험을 크게 높인다. 음주 운전은 절대 하면 안되지만 약 복용 중에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증상 완화를 위해 약을 복용해야 한다면 진정 작용이 적은 성분의 약으로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 졸음을 유발하지 않는 항히스타민제 펙소페나딘은 위약(플라세보)과 비슷한 정도로 운전에 거의 영향이 없었다. 운전해도 괜찮은 약인지 약사에게 물어보고 약을 처음 복용할 때는 실내에 머무르며 몸의 반응을 확인하자. 졸음, 시야 장애, 집중력 저하가 느껴진다면, 운전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