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 업계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얘기는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의 변심(?)이다. 애널리스트 출신 부동산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저출산·고령화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구조적 하락 위기에 처했다는 신중론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채 대표는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장은 강세장이다. 그리고 이걸 디폴트(기본값)로 보는게 맞다. 저도 뷰(견해)를 바꿔서 강세뷰로 유지하고 정책을 지켜보는 게 낫다 싶다”고 했다. 그는 “하반기 부동산은 서울을 넘어 수도권까지 강세장이 올 것”이라며 “무언가 예상치 않은 강력한 수요 억제가 나오지 않는 한 강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급은 반토막, 유동성은 확대
진보정권 집값 급등 학습효과도
불안감 잡는 공급 로드맵 필요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엔 ‘뷰를 갑자기 상승으로 바꿔버리니 혼란스럽다’ ‘태세전환 번개 같다. 구독 중지한다’ ‘말바꾸기의 달인’ 등의 비난이 쇄도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채 대표의 바뀐 생각처럼 흐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주요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2021년처럼 벼락거지가 될 것 같아 불안하다’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 식의 패닉바잉 분위기가 감지된다. 직장인들 사이에는 “잠실 25평 29.5억 거래 완료” “압구정 30평대 72억 신고가 썰” 같은 메시지가 퍼지며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
실제 집값 불안 요인이 즐비하다. 우선 구조적으로 서울 부동산 공급이 부족하다. 내년 입주 물량은 2만4462가구로 올해의 반토막 수준이다. 특히 내년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입주는 단 세 곳(총 7606 가구)뿐으로 올해(11곳, 2만4375가구)의 3분의 1도 안된다.
이재명 정부의 20조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 유동성 확대도 예고돼 있다.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집값을 밀어 올릴 수 있다. 여기에 집값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도 불안 심리를 키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중앙일보에 “서울 부동산 시장은 사실상 패닉 상태”라며 “공급 대책에 대한 신뢰는 없고, 세금 규제는 없다는 대선 공약에, 금리 인하 전망까지 더해지니 집값 상승을 점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부동산 상승세에 이재명 정부의 정책 운용 능력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많다. 단기적으론 가계부채 증가 → 소비 위축 →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계층 갈등, 근로 의욕 저하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다. 만에 하나 부동산 시장이 과거처럼 과열 양상으로 흐를 경우 정권의 기반을 흔들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잡기는 단기간에 풀기 힘든 난제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 진보정권과는 달리 공급 확대를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입장인데, 주택은 바로바로 뚝딱 지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재건축만 해도 2030년 입주가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세금·규제의 칼을 대는 것도 시장에선 집값 상승 신호로 인식할 수 있다. ‘진보 정권이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징벌적 과세와 규제 위주 대책이 오히려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심화시켜 집값을 폭등시킨 아픈 기억이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제시하는 대안은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제어하는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달 9일 기준 서울 지역 ‘매수 우위 지수’는 82.98로 나타났다. 이른바 ‘불장’으로 불렸던 2021년 10월 셋쌔 주(86.07) 이후 192주 만에 최고치다. 한국은행의 최근 정책보고서를 보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는 8개월 후 실제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일단 형성된 주택가격 기대심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아 관리 기조가 중요하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다. ‘부동산은 8할이 심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대심리를 잡기 위해 시급한 건 공급 확대 로드맵이다. 예컨대 이 대통령이 공약서 언급한 1기·2기 신도시 신속 재개발, 3기 신도시 건설을 언제까지 어떻게 진행할 건지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야 한다. 당장 늘릴 수는 없겠지만, 결국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만 줘도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
가계부채 증가 우려도 큰 만큼 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 가이드라인을 더 촘촘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 맞춰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심리를 냉각시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