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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지원금 현금화? 말 안됨” 이재명 기강도 잡았다, 이한주 파워 [이재명의 사람들⑤]

중앙일보

2025.06.22 00:38 2025.06.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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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더중플-이재명의 사람들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면 권력의 지도가 바뀝니다. 이재명의 옆에는 어떤 실세들이 포진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까요.

이재명 정권의 키맨을 한명씩 해부합니다. 각자 어떤 분야를 책임지고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지, 대통령과 그들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끈끈한지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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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사람들⑤
기본소득 제안한 '정책 멘토'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


1986년 초 성남주민교회에 20대 청년이 찾아왔다. 이해학 목사가 이끌던 성남주민교회는 1970년 중반부터 경기 성남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한 곳이다. 1980년대엔 철거민 등 도시 빈민을 위한 시민운동의 중심이었다.

마침 교회 안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경원대(현 가천대)에 갓 부임한 30살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는 청년의 첫인상을 “말수는 적었고, 얼굴이 깨끗했다”고 기억했다. 사법고시 준비생이었던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정책 멘토’인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이 처음 만난 순간이다.

이 대통령은 교회에 자주 드나들었다. 빈민운동과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성남은 서울에서 강제 이주한 빈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광주대단지 사건(1971년 성남의 도시빈민 시위 사건)의 아픔도 여전했다. 이 대통령은 그해 10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89년엔 판검사의 길을 마다하고 성남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8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 민생정책 협약식에서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한주. 뉴스1
도시 빈민이 많던 당시 성남엔 서울·경기 지역 학생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소장파 학자’였던 이 위원장은 그런 청년들과 교류했다. 경희대 수원캠퍼스 총학생회장 김태년(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와 서울에서 온 서울대 약대 학생회장 김미희(전 통진당 의원), 그리고 그의 남편인 백승우(전 통진당 사무부총장)가 대표적이었다. 이 대통령도 그들과 같은 또래였다. 이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조언해 주며 따로 각별히 챙겼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를 거치며 더욱 돈독해 졌다. 이 대통령은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점점 성남 지역 시민운동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어갔다. 이 대통령이 2000년대 후반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하며 둘은 정치적 동지로 발돋움했다.

이 위원장은 “정치를 갓 시작했으니 세련된 공약을 못 만들지 않았겠나. 내가 같이 붙어서 공약을 만들었고, 토론회를 열 필요가 있으면 내가 주선했다”고 회고했다. 전국 최초의 기본소득 정책이었던 2016년 성남시의 청년배당 도입 등 행정가로서 이 대통령 뒤엔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이 위원장이 있었다.

지난해 민주당이 전 국민에게 최소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주는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이 대통령은 이 위원장에게 텔레그램을 보내 “어떤 박사에게 들었는데,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특정 결제 조건을 충족하면 현금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이 위원장은 “말이 안 됨”이라고 답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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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지원금 현금화? 말 안됨” 이재명 기강도 잡은 ‘교수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5576

윤성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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