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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모르그’ 정당의 구경꾼들

중앙일보

2025.06.26 08:18 2025.06.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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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워싱턴 특파원
팔을 비틀어 얻어냈더라도 성취라면 성취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극적인 휴전 말이다. 군사력까지 동원한 트럼프의 개입으로 어쨌든 포성은 멈췄다. 무력 충돌 이후 12일 만이었다. 물론 이란 핵 폐기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래도 문득 가슴을 쓸어내린다. ‘불안한 평화’가 ‘안정된 전쟁’보다는 백배 낫다.

어렵사리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른바 ‘12일 전쟁’의 흔적들을 되짚어본다. 가장 의아했던 것은 트럼프의 무리한 전쟁 개입에 ‘노(NO)’를 외치는 야당 인사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단 점이다. 오히려 골수 트럼프 지지층에서 ‘미국 우선주의’에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나왔을 뿐, 민주당에서 조직적인 반발이 터져 나온 건 없다. 이번 전쟁 개입 이슈뿐만이 아니다. 관세 전쟁, 불법 이민자와 유학생 추방, LA 시위에 투입된 주 방위군 등 트럼프가 몰고 다니는 논쟁적인 사안마다 민주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앞에서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미국 민주당은 죽은 정당처럼 보인다. 아니다. 이것은 진실을 우회하는 문장이다. 다시 말하자. 민주당은 이미 죽었으되, 그 죽음을 구경만 하는 정당이다. 데이터가 명확히 말해주는 진실이 그렇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의 비호감도는 60%까지 치솟았다. 지난 30년 새 가장 높은 수치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정당이 아니라 ‘가진 것 많은 이’들의 정당으로 변모하면서 대중적 호감도가 급격히 추락한 결과다. 지난 대선에서 해리스 전 부통령은 연 수입 20만 달러(약 2억 7000만원) 이상, 백인 고학력층에서 트럼프를 앞섰다. 말하자면 ‘평범한 다수’ 대신 ‘특별한 소수’를 지지 기반으로 취하면서 민주당은 대중정당으로서의 생명력을 서서히 잃어왔다. 문제는 그 누구도 이 사망선고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구경꾼처럼 논평만 하고 있단 점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는 ‘모르그(morgue)’라고 불리는 시체 전시장이 있었다. 신원미상의 시체들이 유리관 속에 전시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연고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겠단 취지였지만, 점차 하루 수천 명이 죽음을 구경하는 오락 거리로 변질됐다. 지금 미국 민주당은 이런 ‘모르그’ 정당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심지어 그 유리관 속에 자신들의 시체가 전시돼 있음에도 이를 구경만 할 뿐이다. 파리의 모르그 앞 시민들처럼, 구경꾼은 죽음 앞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이 무구한 뻔뻔함이 민주당의 생명을 영영 앗아갈지도 모른다.





정강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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