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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미술관·박물관, 이원화 운영 안 된다

중앙일보

2025.06.29 08:16 2025.06.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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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미술비평가
한국의 문화예술 행정은 오랫동안 정부 부처 간 기능 분할과 권한 이양, 예산 운용의 복잡성이 얽히며 중첩되고 분산된 구조로 운영되어 왔다.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내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기반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시각예술디자인과가 각각 맡고 있으며, 신규 국립문화시설의 설치는 또 다른 부서인 문화시설기획과가 담당하고 있다. 예컨대 송현동에 들어설 예정인 국립문화시설(가칭 이건희기증관)처럼 박물관과 미술관의 성격을 아우르는 복합시설의 경우, 운영과 관리의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담당 부서가 분산된 구조에서는 기관 간 협업은 물론 정책의 일관성과 운영 효율성 모두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정책 일관성, 운영 효율 떨어져
이건희관 소관 부서 아직 모호
영국 등 통합 운영이 세계 추세
시대 소통 거버넌스 마련해야

세종시 국립박물관단지 조감도. [사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2019~2023)’을 수립하고, 한때 박물관 및 미술관 정책을 문화기반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으나 일원화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박물관을 유물의 수집·보존·교육 중심으로, 미술관은 시각예술의 창작 지원 및 마케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이원화된 행정 체계가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다. 최근 문화예술시설을 관리하는 국립문화공간재단(시각예술디자인과)의 신설 역시 통합이 아닌 또 다른 부문 쪼개기가 아닐까 우려된다. 행정수도 세종시에서 진행 중인 국립박물관단지 조성 과정도 유사한 사례이다.

세종시에는 2023년 국립어린이박물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국립도시건축박물관, 국립디자인박물관, 국립디지털문화유산센터, 국립국가기록박물관 등이 순차적으로 개관할 예정이다. 이들 시설의 통합 운영은 국토교통부 산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의 국립박물관단지 통합운영지원센터가 맡고 있다. 하지만 개별 박물관의 운영 주체는 각각 다르다. 어린이박물관은 행복청, 도시건축박물관은 국토교통부, 디자인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문화유산센터는 국가유산청, 국가기록박물관은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관할한다.

미술관·박물관이나 문화공간 설립이 여러 부처에 분산되면서 제도적 취약성은 양해각서(MOU), 연구용역, 외부 자문 방식으로 보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행정수도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단지를 연상시키지만, 운영 방식과 제도적 기반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부처 간의 분산 운영은 국가적 차원의 통합적인 박물관 정책 수립을 어렵게 만든다. 이른바 ‘부서 쪼개기 행정’이 초래하는 이질적 기획과 병렬적 구조는 오늘날 박물관과 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공공적 책무, 즉 사회적 기억의 축적과 문화적 권리의 확장을 일관되게 실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제박물관협회(ICOM)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개념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다수의 선진국들 또한 미술관을 문화유산의 공공기관으로 간주하고 박물관과 통합된 운영 체계를 택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은 박물관·미술관뿐 아니라 도서관·기록보관소까지 아우르는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가 모든 공공문화기관을 총괄한다. DCMS 산하에는 테이트(Tate)와 내셔널갤러리·대영박물관 등 14개의 국립박물관과 다수의 비부처 공공기관(NDPB)이 일관된 문화정책의 틀 안에서 운영된다. 프랑스 역시 문화부 소속의 공공행정기관(EPA)을 통해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오르세미술관 등 주요 기관들을 통합 관리한다.

특히 박물관과 미술관의 경계를 시대와 예술 장르보다는 문화적·사회적 기능에 따라 해석하며, 포괄적으로 박물관의 개념을 수용한다. 루브르가 고고학적 유산과 근대 이전 미술품을 모두 소장하고, 퐁피두가 현대미술·디자인·건축·기록자료까지 아우르는 체계는 이러한 행정적 일관성의 결과다. 미국은 국가 차원의 문화부는 존재하지 않지만, 스미스소니언 재단이 20개 이상의 박물관과 갤러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공동 운영한다. 각 기관은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도, 예산과 전략, 정책 기조는 스미스소니언 본부의 통합 거버넌스 전략을 따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능과 부처 간의 분할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공동의 질문이다. 그 물음 앞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은 분리되어서도, 이질적으로 운영되어서도 안 된다. 국립미술관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공공적 의제를 이끌고, 국립박물관이 다가올 시대와 적극 소통하려면 뮤지올로지(muselogy·박물관학) 차원의 전략적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립박물관·국립미술관·국립기록관 등 문화시설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거버넌스 재정비가 요구된다. 이러한 통합 거버넌스는 단순한 행정의 효율성 재고를 넘어, 문화기반시설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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