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와 무더위를 상대로 한 전쟁이 진행 중이다. 세탁한 옷과 욕실 하수구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는 공공의 적이다. 블로거와 유튜버들은 주부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만의 냄새 제거 꿀팁을 공개한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햇볕 아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그때부터 머리 한쪽은 냄새 걱정이 차지한다. 그 때문일까. 최근 디퓨저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방향제를 인테리어처럼 활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실제로, ‘냄새는 빼고 향기는 더하고’ 어느 섬유유연제 광고의 문구처럼 방향제 효과는 뿌리는 순간 나타난다. 제품에 활용되는 원리도 다양하다. 공기 중 화학물질을 흡수 또는 결합해 새로운 물질로 변화시키거나, 냄새의 원인균을 사멸시키거나, 인간의 후각을 교란시켜 불쾌한 냄새에 대한 인지를 저하시킨다.
방향제에 화학물질 포함돼
후각세포 영구 파괴될 수 있어
차 내에서 화재·폭발할 수도
밀폐된 공간서 사용 자제해야
인간이 냄새를 맡는 원리
인간이 냄새를 맡게 되는 과정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91년 존스 홉킨스 대학의 리처드 액설 교수와 린다 벅 박사는 유전자 클로닝 기술을 이용해 냄새 수용체와 후각 시스템의 구조를 처음 발견했고, 그 공로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기 중에 부유한 화학물질은 인간의 콧속 후각 상피세포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한 후 전기신호로 변환돼 신경망을 타고 뇌의 후각중추에 전달된다. 뇌는 이 신호를 해석해서 냄새를 인지하게 되며, 인간에게는 약 1000종의 후각 수용체가 있다. 후각중추가 기억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와 인접해 있어, 인간은 냄새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거나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후각 기능은 다양한 이유로 상실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 코감기나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지면 후각 신경세포까지 도달하는 길이 막혀 그 기능이 일시적으로 상실된다. 노화 과정에서 후각 신경세포의 기능이 퇴화하기도 한다. 조금 불편하지만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들이다. 그러나,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있다. 후각수용체를 가진 후각세포를 손상하거나 파괴해서 이전의 후각 기능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이 그것이다. 구수한 밥 냄새, 향긋한 꽃 냄새, 바다의 짠 내는 물론, 상한 음식이나 유독가스에 대한 위험도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후각수용체를 파괴하는 물질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호흡기 독성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방향제 시장이 커지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방향제에는 향료와 함께 탈취·보존·착향을 위한 화학물질이 함유되며, 항균 기능을 가진 제품에는 보존제 성분이 더욱 강화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사용된 성분이 향초에서 검출되었다는 보도자료가 수시로 나오는 것은 탈취와 보존이 살균·소독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균을 죽이는 물질이 수용체를 손상시킬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일 것이다. 방향제의 오남용이 두려운 이유는 더 있다. 그 첫째는 유해성이다. 나프탈렌은 20여 년 전만 해도 국민탈취제로 쓰였다. 살충효과가 뛰어나 좀약으로도 불렸다. 주부들은 나프탈렌을 신문지로 싸서 옷 사이에 끼워 넣거나 쌀통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프탈렌은 우리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량의 나프탈렌에 노출되면 용혈성 빈혈이나 백내장이 유발되며, 발암 가능성도 의심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두 개 연결된 구조인 나프탈렌은 대표적인 승화성 물질이다. 상온에서 기체로 변화되어 우리의 호흡기나 피부 세포를 쉽게 통과할 수 있다.
페놀·가습기 살균제의 기억 둘째는 화재 및 폭발 가능성이다. 제4류 제2석유류 비수용성, 위험등급 III, 화기엄금. 판매 중인 차량용 방향제의 제품정보다. 등유나 경유처럼, 21°~70℃에서 불이 붙을 수 있다. 실제로, 2009년 차량 내부에 분무형 방향제를 뿌린 후 담뱃불을 붙인 운전자가 얼굴에 화상을 입고 승용차는 전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는 광고문구의 유혹이다. 1991년, 대구지역 수돗물에서 원인 모를 냄새가 난다는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상수관리원은 악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잔류 미생물을 제거하기 위해 다량의 염소를 투입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전자회사에서 유출된 페놀이 염소와 반응해 클로로페놀로 변하면서 냄새와 독성이 더욱 강해졌다. 그뿐인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가습기 물탱크 청소의 번거로움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에 의해 발생했다. ‘아기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문구를 신뢰한 소비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집도 우리 몸도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세균 번식이 쉬운 환경이 된다. 더욱이, 집안 실내 먼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의 각질은 공기 중 미생물과 함께 침대 위 진드기나 곰팡이 성장을 위한 영양분이 될 수 있다. 유럽 연합은 2008년부터 나프탈렌을 함유한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용 중이다. 향을 내는 성분의 대부분이 벤젠 고리를 가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용할 독성자료가 부족한 것일 뿐,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소비자는 안전한 생활화학제품 사용을 위해 밀폐된 공간에서는 방향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여기에는 천연성분도 예외는 아니다. 휘발된 물질이 공기 중에 농축되어 과다 노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