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어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와 관련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상고심에서 원심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지 5년 만이다. 이로써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9년간 이어졌던 ‘사법 족쇄’에서 완전히 풀려나게 됐다.
이번 사건은 죄보다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특수통 검사들의 ‘먼지털기식’ 한국식 특수수사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검찰 수사·기소의 책임자였던 이복현(전 금융감독원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는 삼성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53곳을 압수수색했고, 임직원 등 300여 명을 조사했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이었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지휘 라인에 있었다. 2020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검찰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무려 19개 혐의를 달아 기소를 강행했다. 1, 2심에서 혐의 전부에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반성하고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검찰은 기계적 상고를 선택했고, 최종심까지 완패했다.
그동안 삼성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9년’을 감내해야 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밀렸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적자 폭은 커졌다. 지난 9년간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49% 올랐지만 같은 기간 미국 엔비디아는 7168%, 대만 TSMC는 746% 등 반도체 경쟁사 시총은 급신장했다. 삼성의 부진에는 반도체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 컸지만 사법 리스크로 인한 리더십 공백도 한몫했다.
사법 리스크로 경영이 흔들린 건 삼성만이 아니다. 코오롱그룹도 과학기술에 무리하게 사법적 잣대를 들이댄 검찰의 기소 만능주의로 곤욕을 치렀다. 1심이긴 하지만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 경영진은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성분을 속여 정부 허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4년4개월 만인 2024년 1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우리 검찰과 식약처는 코오롱을 사법 리스크로 몰아갔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충분한 과학적 검토 후 임상 재개를 승인했다. 예고된 ‘더 센 상법’과 노란봉투법 등 기업을 짓누르는 사법 리스크가 더 커지는 분위기다.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삼성은 이번 판결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회장은 2심 무죄 선고 이후인 지난 3월 임직원에게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주문했다. 과감한 인수합병(M&A)과 투자, 사업 조정으로 신성장 사업을 키워 제대로 된 ‘뉴 삼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제는 총수가 재판에 휘둘리는 사법 리스크도 더 이상 없다. 이 회장과 삼성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