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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친윤 세력 이미 분화 시작, 결국 소멸된다"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5.07.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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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 ‘언더 찐윤’과 각 세우며 당대표 출사표 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진짜 혁신은 혁신위원장 아니라 당대표 돼야 가능, 인적 쇄신 여전히 필요”
“당대표 선거 때 국민 여론조사 비중 높여야, 소수 야당은 민심에 호소해야”
“이재명 정부 ‘친중’ 의심 벗어나야, 국가부채 증가와 이해충돌 인사도 우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나락까지 추락한 보수 정당을 살리려면 일단 힘이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친윤의 견제를 뚫고 어떻게 지지세를 만들 수 있느냐가 안 의원의 숙제다. 최영재 기자
국면마다 국민의힘이 다수의 민심과 역행하는 행태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비합리적 현상에 접근하기 위해 여의도에서 만들어낸 키워드가 있다.

‘언더 찐윤’이 그것이다. 이 낱말을 집어넣어야 이 당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의사결정들이 그나마 설명된다. 주로 영남과 강원도에 기반을 둔 속칭 ‘다이묘 의원들’을 일컫는 언더 찐윤은 구심점이 없다. 그래서 정밀한 제거가 어렵다. 이들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포지셔닝을 공유하며 막후에서 기득권을 행사한다. 이는 권성동, 권영세, 나경원, 윤상현 등 친윤 상징성을 지닌 의원 몇몇을 쇄신한다고 해서 국민의힘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암울한 현실을 내포하고 있다.

안철수(63)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당이 처한 상황을 “코마 상태”에 비유했다. 환부를 수술하지 않는 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 상태를 전전할 것이란 경고다. 하지만 언더 찐윤은 안 의원이 하려 했던 ‘백신’ 투여를 완강히 거부했다. 당 주류가 쌓아 놓은 ‘인적 쇄신 없는 혁신’이라는 견고한 벽에 막히자, 안 의원은 지난 7월 7일 혁신위원장 사퇴 후 당대표 출마라는 단호한 태세로 대응했다.

7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안 의원은 어느 때보다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당 지지율 19%(7월 1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라는 나락까지 간 형편에서도 그는 ‘워크 에식’(work ethic, 조직과 일을 대하는 책임감·헌신적 태도)을 이야기했다. “정치의 신 (神)이 와도 이 당은 못 살린다”는 절망적 조건을 인지하면서도, 안 의원은 한 시간 넘게 재생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인력(人力)이 미치는 범위에서 의지를 관철해 보겠다고 역설했다. 숱한 정치적 질곡을 겪으면서도 그가 끝내 생존한 원천은 이런 ‘진정성’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적 쇄신 타이밍 놓고 송언석 원내대표와 이견”


Q : 혁신위원장 직에서 내려온 뒤 ‘쌍권’(권영세·권성동)과 설전도 있었다. 지금 심경은 어떤가?
A : “좀 답답하고 안타깝다. 작년 12월 계엄 이후로 7개월 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 승리) 대선이 있었다. 우리 당이 거기서 교훈을 얻고 바뀌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니 아마 국민이 더 답답해하실 것이다.”


Q : 사실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한 것부터 다소 의외였다. 언더 찐윤들이 안 의원의 혁신안에 순순히 따라올 것이라고 나이브하게 낙관하진 않았을 텐데.
A : “대선 직후 전직 선대위원장인 나라도 지지해준 분들에게 인사 드려야겠다 싶어서 부산·대구·인천· 경기 지역을 다녔다. 그때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송언석 의원이 내 지역구(경기 성남 분당갑)로 찾아왔다. 그때 내가 ‘소수 야당 원내대표 일만 해도 굉장히 바쁠 테니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당 혁신을 가동하면 어떻겠는지’ 제안했다. 그랬더니 송 의원도 ‘좋은 생각’이라 했고, 실제 그렇게 선거운동하더라. 그리고 당선됐다. 그다음에 다시 나를 찾아와 혁신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내가 제안한 것이니 거절하기가 참 난감했다. 그래서 하겠다고 한 것이다.”


Q : 하지만 7월 2일 임명 발표 후 불과 5일 만에 사퇴했다.
A :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이 승인되거나 실행에 옮겨지려면 바로 위에 있는 비대위 혹은 최고위 승인을 얻어야 실행할 수 있다. 혁신위원장이 거기서 거부를 당하니까 항상 실패한다. 나는 당대표만 네 번을 해봤으니 그 구조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찍어내는) 인적 청산이 아닌 (절차를 밟는) 인적 쇄신을 말했다. 쇄신은 사과부터 시작해서 윤리위원회 징계나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높을 때, 가장 먼저 쇄신부터 실행에 옮기면 혁신위원회가 제대로 뭔가 하겠구나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이후의 혁신이 수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비대위원을 겸하는 송 원내대표는 ‘아무 증거도 없이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 (쇄신의 근거와 명분을 만드는) ‘대선 백서’를 쓰자는 데에는 일치했지만, 나는 ‘시간이 없으니 최소한의 사람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먼저 묻자’는 쪽이었다. 거기서 (쇄신의 시기를 둘러싼) 이견이 있었다.”

안철수(왼쪽) 국민의힘 의원의 혁신안은 송언석(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 등 당 주류의 이견에 막혀 무산됐다. [연합뉴스]

Q : 안 의원이 생각한 혁신위원 진용이 따로 있었는데, 당 주류가 배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 : “협의 중이었다. 협의가 덜 끝났는데 그냥 혁신위원 인선안을 발표하겠다고 하더라. 그러니 ‘못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Q : 안 의원이 직접 인적 쇄신 대상을 언급하지는 않았음에도 ‘쌍권’은 격하게 반응했다.
A : “‘정치적인 책임이 제일 큰 사람’이라고 하니까,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그 두 사람 아니냐’고 하더라. 나는 한 번도 실명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Q : 지금 국민의힘 구조에서는 공수처의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용산 관저에서 막았던 44명의 의원들 중 다수를 이루는 언더 찐윤을 거의 다 물갈이하지 않는 한 혁신은 요원하다는 국민 정서가 강하다.
A : “국회의원 임기가 3년 남았다. 선출직을 자를 순 없다. 그러니까 사실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백서를 써서, 거기에 따라 사과하고 윤리위에 제소하고 이런 구분은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윤 전 대통령이 있을 때만 해도 친윤계는 한 덩어리였는데, 지금 분화하 고 있다. 결국에는 사라질 것이라 본다.”



“특검 연장 빌미 주지 말아야”


Q : 언더 찐윤들은 계엄과 탄핵에 관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인데 분화가 되겠나?
A : “친윤계로 알려진 부·울·경 지역 의원이 (혁신위원장 수락 직후) 나를 찾아와 인적 쇄신을 먼저 이야기하더라. (윤 전 대통령이 몰락한 상황인지라 각자도생을 꾀하기에) 금이 가 있다. 옛날처럼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다.”


Q : 이후 7월 9일 ‘윤희숙 혁신위’가 출범했다. 하지만 그 이틀 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지지율 19%’라는 처참함을 보여줬다.
A :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이 꽤 높다. 그러니까 우리 당 지지자들도 이제 등 돌리고, 무당층 내지는 중도로 가버린 것이다.”


Q : 혁신위원장 사퇴와 동시에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진의는 무엇인가?
A : “당대표가 돼야 혁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혁신위원장 때 발표하려 했던 나름의 혁신안이 이미 있다. 예를 들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내년에 선거가 있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미래를 향해서 우리 당의 시스템을 바꾸고,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등이 그 것이다. 우리가 인재 영입에 굉장히 둔감했다.”


Q : 하지만 7월 14일 송언석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 복귀를 외치는 이른바 ‘윤 어게인’ 행사에 참석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사실상 혁신을 거부하고 있다.
A : “정말로 적절치 못하다. 우리 당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이다. 계엄 그리고 탄핵과 절연해야 우리 당이 살 수 있다. 언제까지 옛날로 자꾸만 그렇게 돌아갈 것인가.”


Q : 현실적으로 당대표가 되려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어 떤 방식이든 연대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A : “지난번 당대표 선거는 책임당원 80%, 일반 국민 여론조사 20% 비율로 치러졌다. (시기도, 룰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금 당이 위기 상황이니까, 국민 포션을 더 늘려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50%, 아니면 70%까지도 늘리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에 관해 안 의원은 한 전 대표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반 국민 비중을 늘리면 자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


Q :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3특검’(내란특검·김건희특검· 채상병특검)이 시작됐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압수수색, 출국금지도 당하고 있다. 3특검에 국민의힘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A : “나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편이 맞는다고 본다. 목적은 특검을 연장시키지 않는 것이다. 최대 규모 120명, 170일의 거의 최장기간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연장하면, 바로 다음 지방선거와 겹친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굉장히 큰 타격이 갈 것이다. ‘국민의힘이 방해해서 수사를 제대로 못 했으니까 연장하자’, 이런 핑계를 안 줘야 한다. 물론 정치 보복이 라는 판단이 서면, 강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Q : 이젠 대통령 거부권이란 방패마저 없는 소수 야당이다. 어떻게 민주당과 맞설 건가?
A : “결국 민심을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 인사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지만, 여기서도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무리한 처사가 국민 정서에 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대통령도 (모든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하기엔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민심에 호소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도 그렇고, 3년 후 총선도 그런 방식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선 민심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영재 기자


“10년 도전했지만 현 선거제에서 제3당 어렵다”


Q : 흔히 정치인 안철수를 두고 ‘진정성에 비해 세력이 약하다’는 평이 있다. 어떻게 극복할 셈인가?
A : “내가 (정치개혁을 목표로) 제3당을 10년 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오래 3당을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10년 정도 해보니까 선거제도 때문에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들은 선거제도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독일은 다당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표(死票)가 제로다.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니까, 1% 정당이라도 그것까지 계산해 의원 수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의당 지지자라도 (차선 투표로) 민주당을 찍는다. 그래서 나도 국민의힘에 들어왔고,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세력을 꾸리려고 했다. 하지만 입당 후 1년도 안 돼 전당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개입 전까지는 내가 여론조사 1위였는데, 2%밖에 안 되는 사람이 결국 당대표가 됐다. 이제 윤 대통령이 사라 지고 난 다음, 그래도 자유롭게 한 사람씩 만나면서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정치력 없는 사람이 3김 이래 38석짜리 정당을 어떻게 만들었겠나(웃음).”


Q : 윤 전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의 처지를 보며 그 누구보다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A : “‘범죄자’보다는 ‘초보자’가 낫겠지라고 생각해서 제3당의 길도 포기하면서 그 초보자를 밀어줬다. 그런데 3년 뒤 비상계엄을 할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Q : 만약 안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한다. 그러면 이준석 의원의 개혁신당과 관계 설정이 중요해진다.
A : “지금 우리 당 내부 정리하는 것부터 꽤 시간이 걸린다. 아직 그럴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준석 의원도 목표가 제3당을 안착시키는 것일 텐데, 10년 경험한 입장에서 보면, 1년도 안 된 사람이니 ‘한번 시도해 보라’고 하고 싶다.”


Q : 박빙 선거 구도에서 보수가 분열하면 치명적이지 않나?
A : “(개혁신당에) 출마 자원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국 단위로 후보를 전부 내기는 힘들 것이다. 현역 의원들이 자기 배지 떼고 나갈 리는 없고.”


Q : 이재명의 민주당과 비교해 새로 바뀌어야 할 국민의힘은 어 떤 차별점을 둬야 하나?
A : “우선 이재명 정부에서 제일 우려하는 점이 경제 정책이다. 지금 전 세계가 인공지능(AI)을 포함해 퀀텀 컴퓨팅이라든지 SRM 같은 소형 원전, 이런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돈 나눠주기부터 시작했다. 두 번째로는 외교 정책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도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친중·친북 성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지금 아무리 미국에 위성락 안보실장을 보내도 안 풀리는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지금 주한미군 역할을 점점 대만 방어로 돌리고 있지 않나. 그렇게 되면 북한에 대한 방어 체계가 약해진다. 전시작전권 환수도 정동영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힘들다’고 하고,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된다’고 한다. 어떻게 죽고 사는 문제가 달린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 교환을 안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미국이 한국 기업과 특허 공유할지 걱정돼”


Q :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에 관해선 어떻게 보나?
A : “자질은 둘째치고라도 자기를 변호한 사람들을 국정원, 헌법재판소 등에 집어넣고 있다. 이해 상충, 충돌이다. 중소기업도 이렇게는 안 한다. ‘이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우상호 정무수석이 이야기했던데, 정말 우리 사회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Q : 아직 이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못 만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경주 APEC 참석을 고리로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A : “나토(NATO)에 안 간 것 자체가 시그널이었다. 친중이라고 의심하게 만들었다. 사실 삼성전자를 포함해 먹고사는 문제는 결국 미국의 특허에 기반한다. 그런데 앞으로 신기술에 대한 특허를,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데, 과연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까.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Q : 이 대통령은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명분으로 32조 추경을 편성했고, 국채를 발행해 소비 쿠폰을 지급한다.
A : “기축통화국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0%가 돼도 상관없다. 하지만 비기축통화국은 평균 부채 비율이 대략 53%다. 우리는 이번에 추경을 하면서 이 비율을 넘겼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조차도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부채 비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 결국은 제2의 IMF로 간다는 것이 경제 상식이다.”


Q : 안 의원의 정치 역정을 보면서 ‘한국 정치에서 양보는 하면 안 된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정치하며 인간에 대한 회의가 커지진 않았나?
A : “그래도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 10년 동안 우여 곡절을 거쳤고, 마타도어도 당해봤고, 가족에 관해 근거 없는 공격도 받았다. 그 10년 동안 제3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으로도 해봤고, 양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힘)에도 다 있어 봤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기본적으로 돈 문제나 추문이 전혀 없고, 막말한 적도 없고, 정말 열심히 일해 온 사람이라는 증명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내가 속한 조직의 임무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대선을 통해 사람들이 알게 됐다.”

6월 3일 대선 패배의 밤, 안철수(왼쪽) 국민의힘 의원은 김문수 후보 유니폼을 입은 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연합뉴스]


“‘홍준표, 한동훈과 다르더라’고 들었다”


Q :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때 결이 다른 김문수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A : “당원들이 김문수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면 조직 구성원으로서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 그 모습이 나머지 두 사람(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한동훈 전 대표를 지칭)과 비교됐던 것이다. 의과대학 교수, 안랩(AhnLab) 창업주, 서울대 대학원장 등을 거치 며 나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해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직업윤리, 워크 에식이 됐다.”


Q : 그래서일까. 6·3 대선 개표일 안 의원 홀로 4시간 30분 동안 당 선거상황실을 지킨 장면도 작위적으로 비치지 않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A : “(김문수 후보가 패배하는) 출구조사가 발표되고, 10분이 지나니까 아무도 없더라. 첫 줄에 나만 앉아 있었다. 그 건너편에 20명 이상의 사진기자가 있었다. 나마저 가버리면 다음 날 아침 신문에 ‘텅 빈 국민의힘 상황실’이라는 사진으로 도배가 될 수 있겠 더라.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화장실을 갈까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사진이 찍히면 소용이 없질 않나(웃음). 그래서 김 후보가 와서 패배 승복 연설을 할 때까지 4시간 30분 동안 앉아 있었다. 이를 보며 당원 중 어 떤 분으로부터 ‘그전까지는 손님으로만 여겼는데 진짜 우리 식구 맞더라’라는 고마운 말을 들었다.”


김영준 월간중앙 취재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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