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임신부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낙태 시술을 거부한 폴란드 의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이 낙태금지법 폐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진 지 4년 만이다.
18일(현지시간) PAP통신 등에 따르면 폴란드 프슈치나 지방법원은 지난 16일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의사 3명에게 각각 1년 3개월∼2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4∼6년간 의사면허를 정지했다.
프슈치나 병원 산부인과 의사인 이들은 2021년 9월 임신부 이자벨라 S(당시 30세)가 고열 등을 호소하는 데도 태아가 뱃속에서 숨지도록 의료 처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임신 22주차였던 피해자는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았으나 결국 패혈성 쇼크로 숨졌다. 유족은 의사들이 낙태 시술로 피해자를 살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 일간 가제타비보르차는 "폴란드 여성 인권 투쟁의 역사에 기록될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는 유럽에서 낙태를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나라다. 여기에 2020년 헌법재판소가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더라도 선천적 장애를 이유로 한 낙태는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등 보수 성향 법과정의당(PiS) 집권 시절 규제가 더 강화됐다. 이자벨라 S가 숨진 뒤 몇 달 동안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라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다.
PiS가 2023년 총선에서 8년 만에 정권을 내준 데는 이 대규모 시위 여파도 한몫했다. 그러나 낙태 합법화를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그해 12월 출범한 중도·자유주의 성향 연립정부도 내부 이견으로 낙태 규제 법률을 여전히 바꾸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