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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회장님이 이런 말을 해?"…전문가도 놀란 최태원 행보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5.07.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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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균형발전 전도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의 신(新)기업가 정신

“규제 프리존(Free zone), 광역지자체 단위로 적용해야 효과 있어”
“돈 벌고 일자리 만드는 기업 역할, 사회적 가치 창출로 확장해야”

" 이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런데 왜 대한상의가 이런 데 관심을 가지세요?”, “이게 현실적으로 적용이 가능한가요?” "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외 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종종 외부로부터 이런 물음을 접한다. 대한상의가 추진하는 ‘메가 샌드박스’ 정책 관련 세부 사항을 정부와 국회, 정당 등에 설명하다 보면 이처럼 의아해하는 이들을 만난다는 말이다. 대한상의는 창의적 혁신가도, 야심에 찬 스타트업 대표도 아닌 국내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일 따름이다. 그런 상의가 인구, 결혼 같은 사회적 현안은 물론 교역, 외교 등 국가적 어젠다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기에 이런 반문(反問)을 마주한다.

이를테면 저물어가는 자유무역시대를 대비하는 ‘한·일 경제 연합’, 저출산·고령화 시대 인구 감소를 상쇄할 ‘500만 해외 인구 유입’, 민간의 사회문제 해결 성과를 보상하는 ‘사회 성과 인센티브’ 등의 새롭고 굵직한 제안이 대한상의를 통해 이뤄졌다. 이들 제안은 내리막길 경제를 일으키고, 성장 속도에 추세 전환을 가져오는 지렛대로 제시된 상의의 ‘메가 샌드박스’ 정책과 한 묶음이다.

메가 샌드박스란 혁신 사업자에게 규제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광역’ 단위로 넓힌 개념이다. 기업 단위의 혁신을 넘어 국가 차원의 혁신을 추구하자는 게 대한상의의 야심 찬 성장 어젠다이다.

이에 못지않게 파격적인 대목은 지역 간 불균형 해소, 즉 지역의 균형발전 방안이다. 상의는 날로 위축되는 비수도권 회생 방안으로 ‘지방의 경제·사회·문화 인프라 구축’을 상정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지역 문제 해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방의 경제·사회·문화적 수준을 발전시켜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지역이 비슷한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 함으로써 수도권 집중 문제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대한상의 발행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와 같은 언급은 대한상의의 시야가 전 국토적 관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제안이 나오기까지 상의는 균형발전에 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도출하고자 학계 등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듣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또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실수요자들의 요구를 파악했다. ‘2030의 내가 살고 싶은 도시’(2024년 5월 31일 보도자료), ‘청년층의 지역 전입에 미치는 영향 연구’(2024년 7월 31일 보도자료) 등은 일자리, 인구 유출이라는 지역 소멸의 핵심 요소에 대한 실증적 연구라 할 수 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국가균형발전 의제에 천착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경제단체와 기업인 간담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앞줄 오른쪽 첫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인재가 수도권으로 몰리지 않는 방법론

이에 관해 전국 광역지자체장들의 모임인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박관규 정책연구센터장은 “그걸 실행할 의지가 있다면 아주 공감하고 응원해야 할 제안”이라고 반응했다. 국가균형발전론자인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상의의 일련의 정책 제안에 “지역 소멸, 나아가 국가 소멸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기업과 경제단체가 이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반긴다. 지방이 경제 회생을 도모하고, 소멸 위기 극복 대안을 제시해도 기업이 호응하지 않으면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런 경우 정부가 아무리 정책과 재정을 쏟아부어도 임시변통에 그친다며, 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상의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국내 기업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정부가 여기에 힘을 보태주면 효과적인 대안이 나올 것이고, 지역 회생에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

대한상의에서 지역 균형 발전과 관련한 실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산업혁신본부 산하 지역경제팀이다. 지난해 신설된 지역경제팀은 상의가 추구하는 메가 샌드박스 정책을 지역 경제 활성화, 균형발전 솔루션과 접목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젊은이들이 일하고 사는 데 드는 교육·문화·교통·주거 인프라를 지방에 갖추게 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다. 정주 여건이 조성될 때 인력 확보가 용이하고, 기업도 생산 라인을 지역에 깔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환 지역경제팀장은 “상의가 제안하는 메가 샌드박스 정책은 지방의 인재들이 서울 등 수도권으로 오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지역경제팀은 지방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을 다수 인터뷰했다. 조 팀장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으로 가겠다는 지방 청년은 그리 많은 건 아니라고 파악한다. 나서 자란 고향에 남고 싶어하는 이들이 떠나려는 이들보다 더 많다는 것. 하지만 많은 여성이 수도권을 선호하기에 남성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는 구조가 지방의 인구 유출을 가속한다고 지역경제팀은 진단한다. 여성들이 일할 만한 직장이 지방에 더 많이 만들어질 때 2030 세대가 현지에 머물 수 있다. 여성들에게 적합한 사무직, 서비스업이 늘어나자면 대기업, 스타트업이 지역에 자리 잡아야 한다. 4차산업 혁명시대에 걸맞은 일자리 창출이 지방 회생의 키워드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반면, 수도권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포화 상태다. 경쟁 압력, 주거 압력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심화한다. 지방의 경쟁력이 향상되면 수도권 쏠림 현상은 완화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게 상의가 추구하는 메가 샌드박스 정책의 목표”라고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소개했다.

전국대학노조 부산·경남본부 소속 동아대 등 6개 대학 노조가 지난 2023년 11월 부산시청 앞에서 지방대 붕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중앙포토]


‘특구 불(不)경제’의 맹점

중앙정부가 균형 발전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지역은 날로 위축되는 게 현실이다. 대한상의는 이런 실패의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기도 한다. 대한지리학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특구(特區) 제도 현황 조사가 대표적이다. 특구 제도가 지역별로 나눠 먹기 식으로 지정되다 보니 집적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상의에 따르면 전국에 존재하는 특구는 1000개를 웃돈다. 경제자유구역, 수출자유구역, 기회발전특구 등 명칭도 제각각이다. 이들 특구에는 정부 재정과 세제, 정책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동일한 산업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특구가 중첩적으로 운용되면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말하자면 17개 시·도가 각종 특구에 엇비슷한 산업을 병렬적으로 육성하다 보니 특구의 특성은 희석되고, 특화 산업 육성도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AI·반도체·바이오·헬스 케어 같은 차세대 산업은 광역 지자체 대부분이 전략산업으로 채택해 육성하고 한다.

충남 서천군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내에 풀이 무성한 미분양 부지 전경. 지방이 위축되면서 비수도권 산업단지, 특구의 가동률도 떨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특구 제도에서 개선이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차별성을 상실한 유사 특구의 통·폐합을 꼽는다. 이마저도 담당 부처와 법률이 달라 통폐합 작업에 진척을 보기 어려운 구조라고 상의는 우려한다. 특구는 특별법이나 실정법에 따라 조성되기에 이를 통폐합하자면 관련 법률을 고쳐야 한다. 또 담당 공무원이 순환 보직 운용에 따라 2, 3년 뒤엔 자리를 이동하기 일쑤여서 특구의 합리적 조정 문제는 늘 원점으로 돌아가곤 한다는 것이다.

상의가 추진하는 메가 샌드박스 정책은 이런 ‘특구 불(不)경제’의 맹점을 극복하고 권역별로 상생하는 전략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A지역을 반도체로 밀어주면 인근 B지역은 반도체에 드는 에너지산업을 일으켜 이익을 공유하는 상생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걸 전국 단위로 확산하면 17개 시·도 별로 이익 분배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광역 지자체마다 상황에 맞는 기술, 산업, 콘셉트를 새롭게 매칭해 자체 발전 모델을 창출하자는 게 상의가 추진하는 메가 샌드박스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한상의의 메가 샌드박스 정책은 지역 경쟁력 강화, 국가균형발전과 불가분의 협력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지방 회생에 방점을 둔 이러한 상의의 행보는 국가균형발전을 추구하는 학자들에겐 새로운 변화로 와닿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직속자치분권위원장을 지낸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임교수는 “오랜 분권 역사를 가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중앙집권의 전통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지배한다”면서 “상의의 최근 활동은 기업의 지방 분산이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사회적 과제로 부상한 저출산·고령화 역시 균형발전 문제이면서 자치분권의 사안이다. 대한상의와 최 회장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면 사회가 바뀌고 개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6월 대한상의가 펴낸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이라는 정책제안서는 지역 회생이 주요 국가 현안과 공동운명체임을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메가 샌드박스’는 단순히 ‘기업 투자를 유치하라’라는 주장이 아니다. 미래 신산업을 고리로 글로벌 수준의 환경을 지역에 조성함으로써 새로운 기업 생태계를 만들고, 미래 성장 공간을 창출하여 지역 불균형과 지방소멸, 저출산과 산업 역동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다.”



“대기업 회장 중에 이런 얘기 한 사람은 없었다”

당초 이 책은 대한민국 성장 동력 약화 원인 분석과 함께 새 성장모델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엮였다. 상의는 경제단체가 굳이 이런 쟁점까지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광범위한 의제를 전향적으로 해부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은 “새로운 정부와 함께 미래 한국 경제의 성장 원천을 만들어내야 한다”면서 “글로벌 파트너와 손잡고 고비용을 줄일 실행 방안을 찾고자 한다”고 출간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최 회장은 지역 회생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생성하는 액션 플랜에 관한 의견을 여러 차례 공개리에 피력했다. 2025년 4월 KBS1TV 다큐멘터리 ‘미래 사회로 가는 길, 메가 샌드박스’, 4월 국회 미래산업포럼, 2022년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 등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주한 기업인의 속내를 내비쳤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은 최 회장의 지론에다 상의의 메가 샌드박스 정책, 학계·기업·연구기관 전문가의 토론·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월 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 교수는 대한상의와 최 회장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마 교수는 최 회장의 발언과 상의 운용에 대해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했다. 그는 “기업 총수가 지역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지역 문제 해결책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지역 소멸, 지방 회생 방안과 관련해 학자들마저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는 마당에 기업 총수가 지역 문제는 일자리 문제이자, 규제 혁신의 문제라는 딱 부러진 입장을 내놓는다. 지역을 육성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도모하자는 말이다. 국내 대기업 회장 중에 이런 얘기 한 사람은 없었다. 좀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최태원 회장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재벌 사주들이 일반적으로 내켜 하지 않는 국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게 된 그 출발점이 답을 내포한다.

최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 취임 후인 2022년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나와 SK그룹 회장으로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게 된 심경을 내비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때가 되면 내 울타리를 벗어나 좀 더 사회에 기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경제단체 회장직 수락 경위를 밝혔다. 1960년생인 그의 나이가 60대 중반을 향할 즈음이다. 최 회장은 “이런 일을 할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기업이 바꿔야 할 행동과 패턴 존재해”

기업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평소의 생각도 상의 회장직 수락의 계기가 됐다.

“대기업 회장이라고 너무 신비 속에만 갇혀 있다 보면 이게 또 소통이 안 되고, 그것 때문에 오해와 얘기가 계속 쌓이는 면도 있다. 그래서 활동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사회에 좀 보여줄 필요성도 있지 않나 싶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보통 유보적·부정적인 편이라고 그는 받아들인다. 이런 사회적 인식을 기업인이 나서서 바꿔야 한다고 마음먹은 듯하다. 그는 “기업에 대한 별로 좋지 않은 조사 결과가 나중에 기업 활동에도 상당한 장애 요소가 된다”면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밖으로 나타내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상의 회장 자격으로 국민과 만나면서 착안한 포인트도 인상적이다. “상의 회장으로 국민과 대화하면서 접한 얘기를 취합해보니 우리(기업)가 바꿔야 할 행동과 패턴이 존재한다. 그 패턴을 바꾸고 움직이기 위해 ‘신기업가 정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사회적·국가적 어젠다 설정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대한상의의 동력이 포착된다. 최 회장은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기업가 정신은 한마디로 ‘사업보국(事業報國, 사업을 통해서 나라를 이롭게 한다)’에 수렴됐다. 열심히 사업해서 돈을 벌고, 세금 내고, 일자리 창출하면 사업보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지론이다.

“사회문제를 찾아서 기업도 해결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많이 창출하는 것이 ‘신기업가 정신’이다.”

지난 4월 발족식을 가진 국회 미래산업포럼은 최태원 대한상의회장을 연설자로 초청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과제를 열거하면서 각종 해법도 과감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가 주창한 ‘한·일 경제 연합(economic coalition)’ 구상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경제 대국인 미국, 중국과 견주어 상대적으로 인구, 경제 규모가 엇비슷한 한·일 양국이 EU(유럽연합)와 같은 협력 모델을 만드는 비전이다. 한·일 경제 연합이 성사된다면 아세안 등 다른 권역까지 확대할 수 있고, 한국도 국제사회의 룰을 만드는 파워를 갖는 위치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시각이다.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대한 해법도 획기적이다. 최 회장은 한국 인구의 10분 1, 즉 500만 명 정도를 해외에서 유입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지금까지의 저임금 노동 위주의 인력 수입에서 벗어나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으로부터 고급 두뇌를 유치하는 쪽으로 노동력 확보 전략을 수정하자는 말이다.

앞서 제시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지역 격차 해소는 선행 과제로 등장한다. 대한상의가 추구해온 메가 샌드박스를 지역 회생에 결부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특정 사업이나 소규모 권역을 대상으로 하던 규제 샌드박스를 광역지자체 등 아주 큰 범위로 진행하는 방안이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 싱크탱크 미래산업포럼 발족식에서 ‘최근 한국경제의 도전과제와대응방향’을 주제로 기조연설 중인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중앙포토]


여론과 정치에 연동되는 의제들

최 회장은 미래산업포럼에서 “기존의 규제 프리(free) 권한은 아주 작은 지역인데 그걸로는 임팩트를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고 전제하고 “거의 시·도 단위 형태로 가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운을 뗐다.

예컨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만든다? 그러면 도시의 구성 요소인 산업, 교육, 인재를 유치, 양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각 영역의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한다. 최 회장은 대구의 경우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스마트파워 메가 샌드박스, 울산은 AI 산업 메가 샌드박스, 제주는 금융 메가 샌드박스, 전주는 K-푸드 메가 샌드박스 도전을 언급했다. 광역 또는 기초지자체 단위로 지역 특성을 살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자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7월 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한 새로운 모색’ 관련 토론회에서도 “돈을 집어넣어도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어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바꿔야 한다”며 “사회적 가치를 경제 시스템에 내재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자리한 대한상의는 14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중앙포토]
이처럼 대한상의는 소속 기업의 권익만 대변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도 함께 고민하는 기관으로 발전하는 모양새다. 대한상의가 주도하는 의제들은 여론과 정치에 연동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최 회장은 상의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인간적 망설임과 결단의 면모도 가끔 노출한다고 한다. 예컨대 ‘이 부분은 내가 좀 걱정되는데 이렇게 말해도 될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이 말은 꼭 해야 해’ ‘오해받아도 괜찮아, 내 진심은 이것이니까’ 등 심중(心中)을 드러내는 편이라고 상의 측은 전한다.

국가균형발전을 꾀하는 이들은 상의와 최 회장에게 이런 시도가 현실에서 구체적 성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의 박관규 정책연구센터장은 “비수도권이 성장 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낙관론에 그쳐서는 곤란하다”면서 “개별 기업과 정부가 지방에서 뭔가 이뤄진다는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고 후속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성훈 강원대 교수(지리교육과·국제지역학회장)는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대한상의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내친김에 대한상의가 지역과 기업 간 투자 협약을 끌어내는 데도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상의와 최 회장의 변신이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전기(轉機)가 될 것인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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