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도산공원 인근 대형 건물 앞에 긴 줄이 늘어섰어요. 미국 프리미엄 애슬레저(athleisure·운동과 여가의 합성어) 브랜드 ‘알로 요가(Alo Yoga, 이하 알로)’의 아시아 첫 플래그십 스토어 앞이었죠. 매장은 문을 열자마자 북적였고, 10만~20만원대의 레깅스·요가 매트·헤어밴드 같은 고가 제품들이 빠르게 팔려나갔어요.
한국 진출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알로는 2007년 다니엘 해리스와 마르코 드조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론칭한 브랜드예요. 공기(Air)·땅(Land)·바다(Ocean)의 앞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고, 주력하는 요가복 외에도 수영복·테니스웨어·일상복 등 카테고리가 다양합니다. 2~3년 전부터 테일러 스위프트, 켄달 제너, 지지 하디드, 블랙핑크 지수 등 국내외 셀럽들이 즐겨 입는 레깅스로 입소문을 타면서 국내에서도 직구 열풍이 일었죠.
알로는 ‘요가복계의 샤넬’로 불리는 룰루레몬과 함께 프리미엄 애슬레저 시장을 이끌고 있어요. 그런데 주목할 점은, 도쿄보다 먼저 서울을 아시아 첫 거점으로 택했다는 사실이에요. 단순히 패션에 관심이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인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국내 애슬레저 시장의 특성을 들여다보면 그 배경이 충분히 납득되죠. 오늘 비크닉은 치열한 경쟁 속 판이 커지고 있는 애슬레저 시장을 들여다봤어요.
10년 새 시장 150% 뛰어…‘운동복 그 이상’의 시대
애슬레저룩은 활동성과 기능성을 갖춘 스포츠웨어·아웃도어웨어의 장점을 취하면서, 일상에서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을 말해요. 2015년 룰루레몬이 한국에 상륙했을 당시만 해도 낯선 영역이었죠. 당시엔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전통적인 기능성 스포츠웨어가 주류였으니까요. 하지만 요가복·스윔웨어에 일상복으로도 소화 가능하다는 장점 덕에 2030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았습니다. 과거엔 멋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했다면, 요즘은 ‘편안함’이 스타일의 무기가 된 시대니까요,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가 시간이 늘고, 자신을 돌보려는 태도가 퍼지며 애슬레저 수요가 커졌다”는 게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분석입니다. 여기에 요가·필라테스·러닝 등이 MZ세대의 인기 운동으로 자리 잡고,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 문화가 유행하면서 애슬레저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했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애슬레저룩은 자기 몸을 관리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패션 스타일로 소비되는 경향이 짙다”고 덧붙였어요.
특히 최근 패션업계 전반이 기후변화·소비 심리 위축 등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국내 애슬레저의 상승세는 오히려 뚜렷합니다. 시장은 2015년 약 4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570억원 규모로 성장, 10년 새 150% 이상 늘어났어요. 연평균 11%씩 커진 셈인데, 2034년에는 약 10조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합니다(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 해외 진출을 노리는 브랜드가 가장 먼저 따져볼 것이 시장 규모라는 점에서, 알로의 한국 입성은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겠죠.
국내 브랜드의 ‘핏’과 ‘가격’…경험 기회를 넓히다
이처럼 시장이 빠르게 커진 데는 내공이 탄탄한 국내 브랜드들의 활약도 한몫했어요. 젝시믹스·안다르 같은 브랜드는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가격을 1.5배가량 낮추면서도,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애슬레저를 ‘경험’할 기회를 열었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략은 제대로 적중했습니다. 두 브랜드 모두 지난해 2000억원을 훌쩍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영업이익도 각각 54%, 78%씩 늘며 고속 성장 중이니까요.
단지 저렴해서 인기를 끄는 건 아닙니다. 두 브랜드는 한국인 특유의 체형과 소비 정서를 반영한 제품 기획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어요. 안다르 관계자는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레깅스를 부담스러워하는 국내 소비자 정서에 맞춘 디자인 전략도 주효했다”고 설명했죠. 실제로 안다르의 ‘에어쿨링 핏 텐션 레깅스’ ‘에어엑스퍼트 레깅스’ ‘에어데님’ 등 대표 제품은 실용성과 심미성을 모두 겨냥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고요, 젝시믹스 역시 ‘Y존 부각 최소화’, ‘허리 말림 방지’ 등 ‘아시안 핏(동양인 체형 특화)’ 제품으로 서구 브랜드와의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었죠.
아시안 핏을 내세운 전략은 국내를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통했어요. 2020년 일본 라쿠텐 입점 후 3개월 만에 요가·필라테스 카테고리 1위에 오른 젝시믹스는 현재 오사카·나고야·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4개 매장을 운영 중이에요. 이렇다 할 과점 브랜드가 없는 일본 시장 특성을 고려할 때, 차별화된 디자인과 기술력이 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죠. 안다르도 지난 2월 일본 프리미엄 백화점 이세탄 신주쿠 본점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오픈과 동시에 ‘에어리윈 시그니처 레깅스’ 등이 동나며 흥행을 증명했죠.
커뮤니티가 만든 팬덤, 브랜드는 ‘루틴’을 판다
이를 간파한 애슬레저 브랜드들은 ‘건강한 루틴’을 앞세운 마케팅 활동에 적극적이에요. 룰루레몬은 일찌감치 오프라인 매장에서 요가 클래스와 러닝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브랜드 충성도를 높여왔고, 알로 역시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기념으로 ‘요가 퍼포먼스’를 선보였죠. 젝시믹스와 안다르도 요가·러닝·트레이닝 세션 등 체험형 콘텐트 상시 운영해 팬덤과의 접점을 확장 중입니다. 대부분 20~30명 규모의 소규모 클래스에 무료로 운영되다 보니 참여율도 높다고 해요.
다시 돌아와, 알로의 상륙은 국내 애슬레저 시장에 또 한 번 불을 지필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시장이 커질수록 포화와 경쟁 심화에 따른 구조조정 우려도 함께 존재하죠. 실제로 1세대 프리미엄 애슬레저 브랜드 뮬라웨어는 최근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어요.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패션 산업이 빠르게 순환하는 만큼, 애슬레저도 유행과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시장 초기에 강점을 가졌던 브랜드라도 소비자 니즈에 맞춘 디자인과 카테고리 확장, 콘텐트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죠.
결국 소비자가 애슬레저를 고르는 기준은 단순한 가격이나 기능을 넘어, ‘내 일상과 얼마나 잘 맞는가’로 옮겨가고 있어요. 건강한 루틴과 함께 독창적인 라이프스타일 방식을 내세우는 브랜드, 지금 애슬레저 시장에서 통하는 진짜 공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