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빚을 더 내서라도 경제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해 재정을 더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라 나랏빚 증가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7.2%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0년 이후 47%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BIS는 비영리 공공기관과 비금융 공기업 등을 제외한 좁은 의미의 국가 채무만 포함해 정부부채를 계산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던 2020년 1분기 40.3%로 처음으로 40%를 넘어선 후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부채 비율이 43.6%로 전분기(45.1%)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곧장 상승 추세로 전환됐다. BIS는 올해 1분기 말 한국 정부부채 규모를 약 1212조원으로 추산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세계 주요국 대비 낮은 편이지만, 속도와 방향이 문제다. 부채 비율을 구할 때 모수가 되는 GDP는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반면 정부가 확장재정 기조로 돌아서며 정부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 총지출 증가율은 8.1%로 문재인 정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내년 세수 증가율은 4.9%로 지출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진다는 점이다. 2029년까지 재정지출 증가율은 평균 5.5%인데, 재정수입 증가율은 평균 4.3%이다. 매년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채 발행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은 내년에는 36조4000억원인데, 29년에는 44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강연에서 “지금 경기가 안 좋아 재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도 “국가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재정 지출로 성장동력이 다시 회복되고, 이를 통해 모수인 GDP가 빠르게 불어나면 부채 비율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도 17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재명 정부는) 투자해야 할 부분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아낄 부분은 과감히 아끼고 성과가 나는 재정 운용을 통해 중장기적으로는 GDP를 키워 재정 건전성이 더 확보되는 정책 전환을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생산성을 높이는데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여부다. 올해에만 민생회복 소비 쿠폰으로 12조2000억원의 예산을 풀었다. 정부는 소비심리 회복 등을 긍정적인 지표로 보고 있지만, 경제 체력 자체를 개선 시키는 효과는 적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민생회복 소비 쿠폰과 같은 정부의 직접 현금 지원(이전지출)의 GDP 개선 효과는 사회간접자본(SOC) 대비 38% 수준이다.
복지와 연금 비용 등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2025~2029년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6.3%로 정부가 용처를 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4.6%)을 훌쩍 웃돈다. 정부는 올해 역대 최대인 27조원의 지출구조조정을 했다고 했지만, 정작 지방재정 교부금 등 의무지출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의무지출은 올해 364조8000억원에서 2029년 465조7000억원으로 100조원 이상 늘어나게 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의무지출 구조조정의 효과가 재량지출을 줄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