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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시진핑 모두 "한국 간다"…빅 이벤트 된 APEC, 李 정부엔 외교시험대

중앙일보

2025.09.18 01:22 2025.09.1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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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나란히 참석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첫 미·중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성사될 수 있다는 뜻이다. APEC이 올해 최대 글로벌 외교 무대로 부상하는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은 미·중 사이에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부대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후 특파원단과 만나 시 주석의 APEC 계기 방한에 대해 "확실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사전 협의를 위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다음 달 중 방한하는 데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고 조 장관은 설명했다.

같은 날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대리도 한·미 대통령이 "경주 APEC에서 만나실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미·중 정상이 다음 달 3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면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13년 만에 양국 정상이 동시에 한국을 찾는 게 된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외교의 '큰 장'이 서는 셈이다. 이는 한국이 계엄과 탄핵의 상처를 딛고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다는 걸 상징하는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

미·중 정상은 다자 경제 협의체인 APEC을 자국의 통상 전략을 부각하는 무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 고율 관세 공세에 맞서 중국은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왕 부장은 이날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중·한은 국제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라며 “일방적 괴롭힘이 횡행하는 정세 속에 무역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중심으로 1989년 출범한 APEC은 한국·일본·캐나다·호주 등 미국의 핵심 동맹이 창설 주축이었고, 중국은 1991년에야 합류했다. 주요 7개국(G7)이나 주요 20개국(G20)처럼 전형적인 서방 중심 협의체는 아니지만 APEC 또한 전통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로 동맹·우방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어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말 양국이 ‘상호관세 15%’에 합의했지만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여전히 유지돼 산업계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 또한 한국이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는데도 미국이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에서 수용하기 힘든 일방적인 조건을 고집하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17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국빈관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만나 회담을 하고 있다. 베이징특파원 공동취재. 연합뉴스

APEC 정상회의 결과물인 공동성명 도출 과정에서도 최대 변수는 미·중 갈등이다. APEC은 1993년 이래 매년 공동성명을 채택해왔으나 2018년 파푸아뉴기니 정상회의에선 미·중 무역 전쟁으로 합의가 무산된 전례가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의장국의 외교력도 중요한 만큼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은 빼고 합의 가능한 부분을 중심으로 성명을 마련해 가칭 ‘경주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구체적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APEC을 계기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 및 한·중 정상회담도 주목된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와 시 주석을 연이어 만나 내놓을 메시지를 비교하면 이재명 정부 외교 기조의 실제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워싱턴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의 종언을 선언했고, 18일 공개된 미국 시사잡지 타임 인터뷰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 질서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에서 미국과 함께 할 것이지만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중 관계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PEC에 시 주석이 참석할 경우 서울 등으로 이동해 연이어 양자 방문 일정을 소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럴 경우 정부는 2014년 이후 11년 만의 국빈 방문으로 추진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조 장관은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방문 성격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면서도 "(국빈 방문 등) 양자 방문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의 국빈 방문은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자회의를 전후로 복수의 국빈 방문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는 드문 데다 트럼프의 해외 순방 일정이 늘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17일(현지시간)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외교부

이날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측은 평소 견해차가 큰 사안을 부각하지 않으며 관계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조 장관은 중국이 서해 구조물 문제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했다”고 전했다. 또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은 변함이 없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다만 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의 성사에 변수도 있다. 중국이 첫 미·중 정상회담을 다자회의를 계기로 하기보다는 트럼프가 중국을 양자방문하는 형식을 더 선호하고 있어서다. 최근 중국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기로 하는 등 ‘선물’을 내놓으며 트럼프의 방중을 유도하고 있다.

APEC 전후로 트럼프가 방중할 경우 시 주석의 방한 일정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복잡한 국면에서 중국 측 공식 발표가 없는 가운데 조 장관이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확실한 것으로 느꼈다”고 밝힌 것은 다소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회담 후 보도자료에서 "올해와 내년에 한국과 중국이 각각 개최하는 APEC 정상회의를 잘 개최하는 데 있어 양국이 상호 조율하고 지지하기로 동의했다"고만 밝혔을 뿐 시 주석 방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박현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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