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 ‘SK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DC)’ 건설 현장. 축구장 11개 크기(6만6000㎡)의 부지에서 굴삭기 다섯 대가 끊임없이 흙을 퍼 올리고 50여명의 기술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반에 기초 말뚝을 박아 넣는 파일 공사를 마무리 짓고 건물의 기초를 구축하기 위해 흙을 파내는 터파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터파기 작업이 끝난 구역에선 기초 콘크리트 타설을 준비 중이었다.
현장 시공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속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골조 구조 공사에는 SK하이닉스 청주 공장을 지을 때 사용했던 ‘PSRC’ 공법을 적용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PSRC(Pre-Fabricated Steel Reinforced Concrete)는 ‘선조립 철골+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말한다. PSRC는 철근 골조를 미리 공장에서 제작한 다음 현장에선 조립만 하고 콘크리트를 붓기 때문에 공사 기간을 4개월가량 단축할 수 있다.
━
지상 5층 규모 국내 최대 AI DC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약 7조원을 이곳에 투자한다. 지난 8월 첫 삽을 뜬 이후 빠른 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하 1개 층을 파는 데만 최소 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건물을 지하 없이 지상 5층 규모로 설계했다. 2027년 40㎿ 규모로 시작해 2029년까지 총 100㎿ 규모로 완공할 계획이다. 완공 시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6만장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AI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AI 연산을 위해 고전력, 냉각, 네트워크 역량을 갖춘 데이터센터를 의미한다. GPU 등 고성능 서버를 운용해야 하기에 일반 데이터센터 대비 4~10배에 달하는 전력이 들고, AI 가속기 발열을 식히려면 서버랙(Server Rack) 당 40~100킬로와트(㎾)에 달하는 냉각 용량도 필요하다.
━
왜 울산일까
SK그룹은 AI 데이터센터 설립과 운영을 위해 전사의 역량을 한데 모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AI 반도체 기술은 SK하이닉스가, 핵심 설비 시공 및 냉각시스템 효율화 등 인프라 구축은 SK에코플랜트가, 데이터센터 구축 총괄과 운영은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하는 식이다.
울산이 선택된 건 이런 SK 그룹의 시너지를 한 데 모을 수 있는 곳이라서다. 데이터센터 맞은편에는 그룹 계열사 SK멀티유틸리티(SKMU)가 운영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소가 있다. 이곳에서 친환경 LNG 전력을 직접 공급받고, 비상시에는 한전 전력을 백업받는 전력망 구조를 갖출 수 있다. 평상시엔 한전보다 낮은 단가의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LNG 발전을 통해 온실가스를 절감하는 ‘탄소 절감형 전력 순환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김재석 SK브로드밴드 AI 데이터센터 기술본부장은 “울산은 SK그룹의 생산 모태”라며 “100㎿로 시작하지만 언제든 확장 가능한 부지도 있다”고 전했다.
AWS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방한한 맷 가먼 AW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8일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완공된 데이터센터는 ‘코 로케이션’ 형태로 운영될 계획이다. SK 그룹이 전력과 네트워크 등 각종 인프라를 유지·관리하고 AWS는 서버 룸을 운영하는 식이다. 울산시와 SK는 앞으로 30년간 7만8000명 이상의 고용 창출과 25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에너지→정보통신→반도체에 이어 그룹의 4번째 먹거리로 AI 데이터센터를 꼽았다. 이번 울산 AI 데이터센터를 향후 1기가와트(GW) 규모로 확장해 동북아시아 최대 AI 허브로 만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