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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롯데 새우깡'…버려진 과자봉지도 이 남자 눈엔 '보물' [스튜디오486]

중앙일보

2025.11.14 14:00 2025.11.1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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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486]은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들이 발로 뛰어 만든 포토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일보는 상암산로 48-6에 있습니다. "

전국 산야를 돌며 25년째 추억을 발굴하는 이이교 과자박물관 '인천상회' 관장이 지난달 23일 석모도의 한 폐가 뒷산에서 80년대 빵봉지를 수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이교 관장이 지난달 23일 석모도의 한 폐가 뒷산 쓰레기 무덤을 파헤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남들에겐 그저 쓰레기일지 모르지만, 제겐 보물입니다"
25년째 전국 산야를 누비며 버려진 과자봉지를 캐고 있는 '추억발굴수집가'이자 과자박물관 '인천상회' 주인장인 이이교(47) 관장의 말이다. 그의 사냥터(?)는 주로 폐가 주변이거나 지금은 집터마저 세월에 파묻혀 사라진 깊은 산속이다. 그가 발굴한 수십만 점의 과자·빵·아이스크림 봉지며 음료수·술병 등은 K 식품의 역사를 한눈에 꿰어 볼 수 있는 파노라마 필름이다.

진입로도 사라진 석모도의 한 폐가 뒤 야산으로 들어가는 이이교 관장. 그의 사냥터(?)는 주로 옛날 마을이 있었던 곳 인근 쓰레기를 묻어서 처리하던 곳이다. 강정현 기자

지난달 23일 인천 강화도와 다리로 이어진 석모도의 한 마을 야산 수색에 동행했다. 서너 채 무너진 집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가시덤불로 막힌 진입로를 헤집고 오르자 년식이 꽤 돼 보이는 자동차 장난감, 깨진 유리병, 찢어진 비닐봉지 등이 부엽토에 섞여 나뒹굴고 있다. 이 관장은 비닐봉지에서 나온 하드(아이스바) 껍질을 보자마자 "대부분 하드는 1992년도에 100원에서 200원으로 올랐는데 이 봉지에는 100원으로 찍혀있고, 바코드도 없는 것을 보면 1990년도 이전 것이다"고 식품역사 전문가답게 풀어낸다.

이이교 관장이 지난달 23일 석모도 폐가 인근에서 수거한 하드 껍질. 100원으로 인쇄되어 있고 요즘은 어디에나 있는 바코드도 없다. 강정현 기자

하드 껍질은 워낙 많이 출토(?)되는 것이라 이제 수집대상은 아니라며 발걸음을 옮긴다. 3분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직경 10m는 되어 보이는 쓰레기 구덩이가 보인다. 70년대 소주병과 80년대 빵·과자 봉지가 깨진 그릇 등 각종 생활쓰레기와 엉켜있다. 이 관장은 빵 봉지 세 장과 오래된 소주병 한 개와 덤으로 상태가 멀쩡한 사기그릇과 법랑그릇 등을 장식품으로 가치가 있다며 수거했다.

이이교 관장은 위성지도의 지적편집도를 보면 지금은 마을의 흔적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도 마을의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강정현 기자

"지금처럼 종합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해 처리하기 전에는 마을 근처에 쓰레기를 묻어서 처리하는 곳이 꼭 있었다"며, 이 관장은 최근에는 "휴대폰으로 위성지도 지적편집도를 보면서 도로에서 2~3시간 올라간 깊은 산속에서도 옛날 집터나 밭이 있었던 자리를 확인하며 발굴현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과자박물관 '인천상회'에 전시된 과자들을 정리하는 이이교 관장. 수거한 껍질을 깨끗이 씻은후 실제 과자를 넣어 전시한다. 강정현 기자

지금은 단종된 과자도 최대한 비슷한 과자를 찾아 내용물을 채워 넣는다. 강정현 기자

이 관장은 사비를 털어 2년 전 석모도에서 운영을 중단한 목욕탕 건물을 임대해 식품역사박물관을 개설했다. 박물관에는 수십 년 동안 전국 팔도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식품회사 600여곳에서 생산했던 식료품 포장지 등 10만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도 생산 중인 제품은 시대별 포장지의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포장지만 전시하는 것은 아니다. 관람객이 옛날 과자나 라면 봉지를 만져보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당시 과자봉지에 실제 과자를 넣어 부피감을 살린 전시물도 많다. 원조와 짝퉁 비교는 물론 삼성 소주, 롯데 새우깡같이 낯선 조합의 제품이 역사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50년도 더 된 삼성 소주병. 삼성이 소주도 만들었나 싶지만. 전시장에 가면 삼성소주 외에 삼성사이다 병도 볼 수 있다. 강정현 기자

농심 새우깡으로 알려진 새우깡은 처음엔 롯데에서 생산했다. 정가 50원이 인쇄된 출시 당시의 새우깡 봉지. 강정현 기자

이이교 관장이 지난달 초 강원도에서 수거해 두었던 군용 새참컵면 용기를 씻고 있다. 강정현 기자

석모도 추억박물관 '인천상회'에 전시된 라면봉지들. 시대순으로 포장지의 변천사를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강정현 기자

이 관장은 "아내와 둘이 운영하는 개인박물관이라 어려움이 많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박물관을 찾은 할아버지와 손주,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과자 봉지 하나를 놓고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때는 뿌듯하다"며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이교 관장은 최근에는 전국 팔도에서 생산했던 그리고 생산중인 막걸리 병을 모으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 관장이 수거하거나 실제 양조장을 찾아 수집한 전국 막걸리 병을 정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강정현 기자([email protected])


강정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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