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부천 제일시장 트럭 돌진 사고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급발진’보다는 평소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운전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14일 경기 부천 오정경찰서에 따르면 운전자 A씨(67)는 당초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관련 증거를 제시하면서 페달 오조작을 시인했다. 결정적 증거는 A씨가 차량에 설치한 페달 블랙박스에서 나왔다. 블랙박스엔 그가 가속 페달을 밟는 장면이 녹화돼 있었다. A씨는 차량 기어를 실수로 잘못 넣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급히 차량에 탑승했다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명의 사망자를 낸 시청역 사고 때도 운전자 차모(69)씨는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가속 페달에 ‘슈마크’(발자국)가 선명했고, 브레이크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국과수는 사고 차량과 동일한 제네시스 GV80 차량의 전자식 제동 제어기가 꺼졌는데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자 차량이 완전히 멈추는 것을 확인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던 국과수 급발진 주장 감정 건수는 올해 처음으로 감소했다. 국과수의 관련 감정 건수는 2022년 67건, 2023년 105건, 2024년 133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8월까진 40건으로 추세가 꺾였다. 국과수가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감정한 총 396건 중 급발진으로 결론 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과학적 분석 결과가 누적되면서 운전자 과실을 수긍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설계 원리상 차량 급발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서로 독립된 시스템인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이 한꺼번에 고장 나는 결함이 생기지 않는 이상, 급발진이 발생하더라도 차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급발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평소 갖고 있으면 다급한 상황에서 자기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고 계속 착각할 수밖에 없다”며 “해외는 급발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데 국내도 여러 교육을 통해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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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2029년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의무화”
페달 오조작을 방지하는 기술적 대안 마련도 중요 과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고령 운전자를 중심으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도입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차량 전·후방 센서와 카메라로 장애물을 감지하고, 가속 페달을 과도하게 밟을 때 차량의 돌발 출발을 막는 장치다. 김혜빈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RPM(분당회전수)이 4500까지 치솟는 등 급가속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장치다. 다만 2010년 이전 차량은 설치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천안·정읍 지역 65세 이상 택시 기사 60명의 차량에 해당 장치를 설치했다. 이 기간 3명의 운전자에게서 총 9건의 오조작이 발생했지만, 장치가 즉시 작동해 모두 사고를 방지했다고 한다. 공단은 경찰청과 올해 협약을 맺고 시범 대상을 141명을 확대해 이르면 12월 말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도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하겠다고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장착 의무화는 2029년 1월 1일부터 제작 및 수입되는 신차부터 적용된다. 이후 2030년 1월 1일부터는 3.5t 이하의 승합·화물·특수차에도 도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