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은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3명 중 1명이 앓는 국민 질환이다. 흔한 만큼 가볍게 여기기 쉽지만, 고혈압은 어디에 생기느냐에 따라 생사를 좌우하는 치명적 질환으로 돌변한다.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혈관인 폐동맥의 혈압이 높은 폐동맥 고혈압(PAH)이 대표적이다. 전신 혈관의 혈압이 높은 고혈압과 달리 폐의 혈액 순환이 불량해지면서 폐·심장 손상이 생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주요 장기 2개가 동시에 망가지는 셈이다.
심장에서 폐로 흐르는 혈류 흐름이 약해져 산소·이산화탄소 교환이 잘 안 돼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다. 혈류량을 늘리려고 심장이 더 강하게 펌프질을 하면서 과부하를 일으킨다. 결국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지면서 돌연사 위험이 매우 커진다.
고작 혈압이 높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폐동맥 고혈압은 진단·치료가 늦으면 생존 기간이 3년 남짓에 불과하다.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오른쪽 심장은 조금만 혈압이 높아져도 부정맥·심부전 같은 치명적 심장 질환이 잘 생기고 악화하기 쉽다. 이재승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의 도움을 통해 몰라서 더 위험한 폐동맥 고혈압에 대해 알아본다.
Q1. 혈압 측정 때 정상으로 나오면 폐동맥 고혈압은 안심해도 된다
(X) 아니다.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연결된 폐동맥 혈관의 혈압만 부분적으로 높은 상태다. 팔뚝을 압박해서 재는 일반적인 혈압 측정 방식으로는 혈압이 정상으로 나온다. 그래서 폐동맥 고혈압이 있어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폐동맥 고혈압은 질병이 진행하면서 임상적 증상이 점진적으로 발현된다. 초기에는 주로 운동 시에만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났지만, 점차 산책·외출 등 가벼운 신체 활동에도 호흡곤란 증상이 심해진다. 계단 1개 층만 올라도 쌕쌕거리고 어지럼증·흉통을 호소한다.
진단도 까다롭다. 폐 혈액순환과 관련이 있는 폐동맥 혈관의 혈압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느다란 카테터를 허벅지에 위치한 대퇴정맥을 통해 오른쪽 심장을 거쳐 폐동맥으로 삽입하는 우심도자술을 시행해야 한다. 검사 자체가 침습적이라 혈액 검사, 폐 기능 검사, 심장 초음파 등을 먼저 실시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있을 때 우심도자술로 폐동맥의 혈압을 측정해 감별한다.
Q2. 루푸스, 전신경화증,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있다면 폐동맥 고혈압에 더 취약하다
(O) 사실이다. 폐동맥 고혈압의 대부분은 발병 원인을 모른다. 그런데 자가면역 질환을 앓으면 이로 인해 폐동맥 혈관이 좁아져 이차적으로 폐동맥 고혈압이 생길 수 있다. 자가면역 질환으로 치료 중이라면 폐동맥 고혈압 증상이 없더라도 주기적으로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폐동맥 고혈압은 40대 중반 이후 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다. 폐동맥 고혈압으로 심장 기능이 떨어진 다음에야 뒤늦게 병원을 찾는다. 조기 진단이 중요하지만, 임상적 증상이 심장, 폐 질환과 증상이 비슷해 치료 적기를 놓치기 쉽다. 폐동맥 고혈압은 증상 발현 후 진단까지 2~3년 정도 걸린다고 알려진다.
Q3. 폐동맥 고혈압도 혈압이 높으니 혈압약을 먹으면 된다
(X) 전신 혈압을 떨어뜨리는 혈압약을 먹는다고 폐동맥 고혈압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폐동맥 고혈압은 만성 질환인 고혈압과 원인, 증상, 치료법이 완전히 다르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혈관에 주로 작용하는 약으로 좁아진 폐혈관을 확장해 폐동맥 혈압을 낮추고 심장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폐동맥 고혈압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할수록 장기 생존에 유리하다. 올해 하반기부터 일산화질소라는 전구물질 없이 혈관 확장 반응을 유도하는 리오시구앗 등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여러 연구를 통해 리오시구앗 전환 군은 기존 약물 치료 군과 비교해 투약 24주 시점에서 치료 목표 도달률이 2.7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Q4. 폐동맥 고혈압으로 돌연사가 생길 수 있다
(O) 사실이다. 폐동맥 고혈압이 진행하면서 부정맥·심부전 같은 치명적 심장 질환이 생길 수 있다. 폐동맥 고혈압의 5년 생존율은 71.8%다. 암보다 생존율이 더 낮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26%는 돌연사한다는 보고도 있다. 폐동맥 혈관의 평균 혈압이 60mmHg보다 높으면 돌연사 고위험 신호다.
만약 혈압을 측정해도 정상으로 나오고 폐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데 이유 없이 다리가 잘 붓고 조금 걸어도 쉽게 지치고 가벼운 집안일도 숨이 차고 늘 피곤하다면 폐동맥 고혈압을 의심하는 것이 좋다. 비특이적이라 무시하기 쉽지만, 폐동맥 고혈압으로 오른쪽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지면서 혈류가 정체돼 나타나는 임상적 증상이다.
Q5. 호흡곤란 같은 증상이 좋아지면 약을 끊을 수 있다
(X) 아니다. 폐동맥 고혈압은 완치가 어렵다. 진행성 질환인 폐동맥 고혈압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이 진행하면서 관련 증상도 점진적으로 심해진다. 약물치료는 심폐 기능 저하로 호흡곤란이 심해지고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특히 초기부터 다른 기전을 가진 두 종류 이상의 약을 쓰는 병용 요법이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폐동맥 혈압이 높고 심부전 징후가 있는 고위험군만 처음부터 병용 요법을 시도한다. 저위험군은 증상이 심해지면 순차적으로 약을 추가한다. 치료 과정에서 증상이 좋아지지 않거나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면 담당 주치의에게 빨리 알리고 병용 요법을 시작해야 한다. 약효가 충분하지 않으면 폐동맥 고혈압이 진행하면서 추가적인 폐동맥 혈관 변화가 나타나고 심폐 기능이 더 약해진다.
폐동맥 고혈압은 조기에 진단 ·치료하면 생존율이 3배 이상 높아진다. 적극적 치료로 15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환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