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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가 반한 맛, 주황색 가을이 깊어가는 고종시 곶감마을[스튜디오486]

중앙일보

2025.11.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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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오색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 지리산 자락 농가에서는 잘 익은 고종시 감을 깎고 매달아 깊어가는 가을 풍경에 붉은 빛을 더한다. 이곳에서 가을 풍경은 허공에 매달린 곶감과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다. 서늘한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10~11월은 경남 함양 농가의 1년 중 가장 분주하면서도 색채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경남 함양군 오현마을 곶감 농주 신서성씨가 건조장에서 감을 매달고 있다.
지난 10일 경남 함양 서하면 오현마을 신서성씨 곶감 농원 건조장에는 마치 단풍잎이 공중에서 다시 피어난 듯 주홍빛 고종시가 줄지어 매달려 있다. 갓 깎아낸 감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수분을 잃어가는 과정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차가운 날씨와 건조한 공기가 곶감의 품질을 좌우 한다.
고종시(高宗柿)는 고종황제가 맛을 보고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품질이 뛰어난 품종이다.
신서성씨가 감밭에서 감을 따고 있다.
고산지대에 둘러싸인 함양은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바람이 일정하게 불어와 곶감 자연 건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말린 곶감은 속살이 부드럽고 향이 깊으며 당도가 높다.
20년째 곶감을 만든 신서성씨는 3000평의 감밭에서 감을 수확한다.
이곳 주민들은 이 시기에 하루 수백 개의 감을 손질해 건조대에 걸고, 날씨 변화에 따라 환기와 온도를 꼼꼼히 살피느라 분주하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을 이어온 신서성씨는 올해로 20년째 이곳에서 곶감을 만들고 있다. 이날도 감밭으로 향한 그는 “지금이 딱 좋다. 껍질이 얇고 단단한 지금 따야 곶감이 맛있게 마른다”며 기다란 장대로 높은 가지 끝의 감들을 능숙하게 땄다. 감이 홍시가 되기 전에 수확해야 하는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수확한 감은 1주~10일 동안 저온 숙성을 시킨 뒤 깎는 작업에 돌입한다.
어느새 가득찬 바구니를 들고 이동한 작업장에는 상자마다 주황색 감으로 가득했다. 작업장엔 껍질 깎는 기계 소리에 맞춰 사람들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깎은 감을 건조장에 말리기 위해 집게를 꽂은 모습.
껍질을 벗긴 감이 건조장에 걸리자 천장부터 바닥까지 주황색으로 채워진 풍경이 펼쳐졌다. 바람이 자연스럽게 통하고 햇살이 일정한 각도로 드는 건조장 모습은 함양이 곶감 산지로 손꼽히는 이유를 한눈에 보여줬다.
곶감은 비타민 A, B, C가 풍부하고 펙틴(pectin)과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가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신 씨는 “햇빛도 종일 비치면 안 되고, 바람이 잘 통해야 당도가 제대로 올라간다”며 감의 방향과 간격을 일일이 세심하게 맞췄다.
함양 고종시 곶감은 산림청 지리적표시 제39호로 등록되어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신서성씨가 깎은 감을 매달고 있다.
40일 정도 건조한 감은 채반으로 옮겨 다시 1주일가량 ‘마사지 작업’을 거친다. 곶감 내부의 수분을 균일하게 퍼지게 하는 과정으로 식감과 완성도를 좌우한다. 주황색으로 시작한 감은 시간이 흐르며 진한 갈색으로 변하고, 당분이 겉으로 넘쳐 나오면서 고운 백분으로 피어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사지 작업'이 끝나면 상품박스에 담아 약 20일 동안 냉동실에서 보관하며 숙성 과정을 거쳐야 맛과 색깔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계절을 품은 고종시 곶감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다.
햠양의 대표적인 타래곶감. 사진 함양군
감 한 알이 곶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농작업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해오는 지역의 기술과 문화다. 고종시가 단풍처럼 익어가는 이 계절, 함양의 건조장 풍경은 풍요로운 농촌의 가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자연의 기운과 사람의 손맛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 전통의 맛은 ‘달콤한 겨울’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김종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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