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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시선] 美 발 뺀 공간에서…中 '전랑외교', 다시 시작되나

연합뉴스

2025.11.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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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시선] 美 발 뺀 공간에서…中 '전랑외교', 다시 시작되나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한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에 중국이 격렬히 반응하는 상황이 3주를 넘어서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7일 문제의 언급을 하고 이튿날인 8일 쉐젠 주오사카 총영사가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극언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이후 삭제됨) '말'의 수위는 일찌감치 끝까지 올라갔다.
이어 중국은 13일부터 '행동'으로 일본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날 심야 시간에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 "일본은 여전히 뉘우칠 생각이 없다", "다카이치의 대만 관련 발언은 극도로 나쁘고 극도로 위험하다", "14억 중국 인민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등의 말을 하며 거칠게 항의했는데, 중국 외교부는 이 행동에 '지시를 받들어'(奉示)라는 표현을 붙였다.
지난 14일 중국 관영매체는 당국이 '대일본 제재'와 '정부 간 교류 중단' 등 실질적 반격 준비를 마쳤다고 공언했다. 이후 15일에는 일본 여행 자제령, 16일엔 일본 유학 자제령, 17일엔 일본 영화 수입 중단 등이 이어졌다. 19일에는 겨우 재개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다시 중단했다.
중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일 양국 총리 간 접촉을 거부했고, 한중일 정상회의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베이징을 찾아온 일본 외무성 당국자를 맞은 중국 외교부 국장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면박'을 주듯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언론 앞에 연출하기도 했다.
그 사이 외교부·국방부 등 정부 부처는 하루가 멀다고 일본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고, 관영매체들의 조롱 섞인 언사도 계속되는 중이다.
이처럼 일사불란하고 전방위적 보복 조치가 가능한 것은 당국 전반이 받드는 '지시'가 최고 지도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중국이 내세운 조건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철회로, 사실상 일본의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아베 내각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며 중국 견제의 주요한 축을 맡아온 외교정책적 연속성이 있다는 점, 대만해협의 급변 상황은 대만은 물론 미국 등 동맹국 전반의 이해관계에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쉽사리 물러서리라고 보기도 힘들 것 같다.
중국도 이를 알기에 일본을 본보기로 확실히 굴복시키려는 것일 수 있다.
요즘 중국의 압박 상황을 두고 인도의 국제정치 전문가 브라마 첼라네이는 칼럼에서 "만약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하고 외교적으로 영향력 있으며 미국의 방위조약으로 보호받는 일본을 벌줄 수 있다면, 다른 어느 국가도 자신이 (중국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면서 "중국이 다른 국가들이 흡수하길 바라는 교훈은 분명하다. 대만에 침묵하고 남·동중국해부터 히말라야까지 이르는 중국 팽창주의에 침묵하며 중국 내 인권 침해에 침묵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는 '강압적 외교'를 외교 정책의 교리로 승격한 것"이라고도 했다.
최근의 중일 갈등과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가 단순히 '핵심이익 중의 핵심'인 대만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전략 변경 때문일 수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이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미중 관계의 변화를 이번 중일 갈등의 변수로 추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에서 "미국은 중국에 있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했고, 다음날 다카이치 총리에게는 중일 갈등 고조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전 세계에 투사해온 영향력을 '미국 우선주의' 아래 회수하고 있는 듯한 미국과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를 모토로 대만-일본을 잇는 제1도련선을 넘어 태평양으로 영향력을 넓히려 하는 중국이 동맹국 관계보다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정상 간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한때 뉴욕타임스(NYT) 등 서방 매체 일각에선 중국이 '전랑외교'(戰狼外交·wolf warrior diplomacy) 색채를 빼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은 바 있다.
공격적인 언사와 행동으로 타국에 중국의 이익을 강요하는 전랑외교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친강 전 외교부장이 실각한 뒤 비교적 부드러운 인상의 류젠차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차세대 외교 수장 물망에 오른 작년 초다.
이때만 하더라도 한창 격화하던 조 바이든 당시 미국 행정부와 중국의 갈등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양국이 대화를 모색해가는 분위기였고, 중국은 미국 주도의 촘촘한 첨단 기술·안보·무역 포위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을 향해 유화적 제스처를 자주 취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가 들어선 뒤 다시 시작된 관세 전쟁에서 중국은 출혈을 감수한 채 미국에 맞대응해 휴전을 이끌어냈고 세계에 중국이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강대국임을 보여줬다.
올해 9월 미중 국방장관 화상 통화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장관은 미국이 '우선순위 전구(戰區)'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핵심이익'(vital interest)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둥쥔 중국 장관 역시 서로가 핵심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며 대만과 남중국해에 미국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해 전인 작년 5월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 당시 미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로이드 오스틴 당시 미국 장관이 중국군의 '대만 포위' 훈련을 '도발적인 행동'으로 규정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보장부터 중국의 러시아 지원,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 등 현안을 폭넓게 거론한 것과 비교할 때 미국의 언급이 간소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은 이튿날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黃岩島> )에 '국가급 자연보호구역'을 신설한다고 발표하는 등 더 자신감 있게 '행동'에 나섰다.
그런 중국은 이제 일본과의 갈등을 계기로 타국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물러나며 생긴 공간에 '전랑외교'로 무장한 중국이 치고 들어가는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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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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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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