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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강성층을 다수처럼 포장…여야 '당원권 강화'의 함정

중앙일보

2025.11.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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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당원권 강화’ 왜 문제인가

여야 대표가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당심(黨心) 강화’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정청래 대표가 당내 선거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모두에게 ‘1인 1표’를 부여하는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 경선룰을 현행 ‘당원 50%, 여론조사 50%’에서 ‘당원 70%, 여론조사 30%’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론 차이가 있지만, 결정 과정에 당원들의 입김을 많이 반영하겠다는데 맞춰져 있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lee.yoonchae@joongang.co.kr
당내 반발이 격렬하다는 것도 동일하다. 민주당은 이언주 최고위원 등이 “졸속적이고 즉흥적 추진”이라며 공개 반발하면서 이달 28일에서 내달 5일로 결정이 미뤄졌고, 국민의힘에선 윤상현·조은희 의원 등 수도권 의원들이 “민심을 외면한 자충수”라며 반대하고 있다.

① 당원 권한 강화, 왜 논란인가
최근 정치권이 ‘당심 강화’를 피력하며 강성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민주당 대선경선 연설회. [뉴스1]
도마 위에 오른 민주당의 ‘1인 1표제’는 필연적으로 대의원의 권한 축소를 전제로 한다. 정당법에선 당원의 총의를 반영할 대의기관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당원의 대리인이 대의원이다. 당 지도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은 당연직 대의원이고, 지역위원장이 40여 명을 임명할 수 있다.

그동안 대의원은 일반 당원보다 발언권을 높게 인정받았다. 2022년 전당대회의 경우 민주당은 대의원 투표 30%, 권리당원 투표 40%, 국민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여론조사 5%를 반영했다. 당시 대의원(1만6000명)과 권리당원(약 140만2000명)의 숫자 차이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대의원 1표=권리당원 60표’의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대의원 반영 비율을 지속적으로 줄였고 정청래 대표가 당선된 지난 8·2 전당대회에선 ‘대의원 1표=권리당원 17표’까지 낮아졌다. 강성 지지층은 대의원 폐지와 ‘1인 1표제’를 줄곧 요구해왔다. 직접 민주주의 원칙에 맞다는 것이다. 정 대표도 이런 명분을 내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되레 ‘정당 무력화’를 우려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당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소수의 강성 지지층 목소리를 다수처럼 포장하겠다는 것”이라며 “명분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나, 건강한 정당 모델에 부합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윤왕희 성균관대 미래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중민주주의로 대의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에 대의제를 하는 것이다. 국회도 대의기구이듯, 정당도 그 안에 대의원을 두는 것”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를 하자’면서 사실상 특정 정치인의 지지층을 대거 끌어들여 대의제를 무력화시키고, 결과적으로는 정당의 절차나 조직을 형해화하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선례로 꼽히는 것이 지난해 7월 민주당 전당대회다. 이재명 당시 대표는 대의원 투표 반영 비율을 30%→14%로 하고 대신 권리당원 비율은 40%→56%로 확대했다. 그 결과, 비명계 대의원의 표심이 약화하고 강성 권리당원 입김이 강화하면서 친명계 후보만 당선됐다. 이른바 ‘일극체제’의 완성이란 평가가 나왔다.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김민석 총리가 첫 순회 경선에선 당선권 밖이었지만 이 대표가 유튜브에 동반 출연하며 측면 지원하자 단숨에 1위로 올라서고, ‘이재명 견제’를 내걸고 첫 경선에서 1위에 올랐던 정봉주 전 의원이 끝내 당선권 밖으로 밀려난 배경이기도 하다.

민주당 일각에선 정 대표가 ‘1인 1표제’를 추진하는 것도 연임을 위한 포석으로 본다. 정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46.91%)보다 권리당원(66.48%) 득표가 더 많았다.

전문가들은 지방선거 경선에 당원 투표 비율을 높이겠다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속내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처럼 동원할 수 있다고 보는 거다. 결과적으로 강성 지지자들에 의해 당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절차적으로는 민주주의인데 비민주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② 선진국형 정당인가, ‘떴다방’인가
최근 정치권이 ‘당심 강화’를 피력하며 강성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뉴스1]
국민의힘 전당대회 시기에 통일교 측의 집단 입당 의혹이 보여주듯 당원 증가의 실체가 사실상 ‘동원의 정치’에 가깝다는 관찰이 많다. 민주당의 권리당원 수치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중앙SUNDAY가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양당 당원 수를 보면 2020년 10월 80만3959명이었던 민주당 권리당원은 245만4332명(2023년 6월) →131만 766명 (2024년 12월)으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당원주권주의를 강조하는 측에선 영국이나 독일 등 당원 권한이 강한 국가들을 예로 들지만, 한국의 정당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왕희 연구원은 “영국이나 독일의 경우엔 정당에 가입하려면 지역당에서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며 “한국처럼 가입하고 당비만 내면 자동 가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에서는 당원이 지역당을 강화하면서 뿌리부터 튼튼히 하지만 한국은 당원이 되자마자 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 선출 등 중앙 권력을 바꾸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 권리당원 규모가 들쑥날쑥한 이유”라고 짚었다.

③ 당원만 위한 정치에 수백억 보조금?
‘1인 1표제’(민주당)와 ‘당원 70% 경선룰’(국민의힘)은 모두 중도층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양쪽 모두 ‘일단 당권만 잡고 보자’는 식이다.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당원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며 “이러면 내년 지방선거 후보들도 국민이 아니라 당원들만 쫓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당 모두 목소리 큰 강성 지지층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두 정당 중 한 곳을 더 싫어하는 유권자만 잡아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도층의 거부감을 일으켜 투표율을 낮추고, 강성 지지층끼리의 표 대결로 끌고 가는 ‘트럼프 전략’”(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강성 당원만을 위한 정치’라면 수백억원에 달하는 국가보조금 지급도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342억5800만원, 국민의힘은 205억2700만원의 당비를 걷으면서도 혈세(국고 보조금)로 각각 438억1000만원, 411억5200만원을 받았다. 그렇게 지원받은 양당이 지난해 쓰고 남은 이월금은 민주당 450억8900만원, 국민의힘 72억600만원이었다. 한국은 국고로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모두 지원하는 이례적인 경우다. 미국은 국고 보조가 아예 없고, 일본이나 독일은 둘 중 하나만 지원받는다.

④ 인구 9% 호남이 33% 입김
양당의 ‘당심’ 강화가 ‘특정 지역 과다 대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 교수는 “권리당원은 대의원처럼 중앙에서 지역이나 직업별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이 약세인 지역의 의견은 묻히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경우 2024년 12월 기준 전체 당원은 499만5756명인데, 이중 호남은 167만3300명으로 전체 33.5%를 차지하고 있다. 호남 인구(458만6042명)의 3명 중 1명은 민주당원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이는 전체 인구(5121만7221명) 대비 9% 정도인 걸 감안하면 4배 가까이 과다 대표된 셈이다.

이보다는 덜 하지만, 국민의힘의 상황도 다르진 않다. 대구·경북(TK) 인구는 전체 인구에서 9.6%를 차지하지만, 국민의힘 당원에선 14.6%다. 부산·울산·경남(PK)도 전체 인구에선 14.8%지만, 국민의힘 당원에선 18%다. 신 교수는 “결국 당 지도부가 전체 국민이 아니라 강세 지역의 여론에 업혀 가는 식으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성운.신수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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