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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만에 티켓 매진, 10분 만에 20만원→970만원 됐다"

중앙일보

2025.1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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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입장권 암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경찰이 지난달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입구에서 티켓 점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정각이 되자마자 광클릭했는데 1분 만에 매진이 됐어요. 그런데 10분도 안 지나 중고 플랫폼에 200만~300만원짜리 암표가 잔뜩 올라오더라고요.”

올해 말 인기 아이돌 그룹 콘서트를 보고 싶었던 직장인 최수현(32)씨는 그토록 원했던 티켓팅에 실패한 뒤 “정가 예매는 이미 ‘복권 당첨’ 수준이 된 지 오래”라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공연장을 찾기 위해 수십만원의 숙박·교통비까지 기꺼이 감수하는 팬들이 상당수지만 티켓을 얻지 못하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도, 돈도 다 쓰지만 결국 암표 판매자만 남겨 먹는 구조”라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다.

연말 콘서트 대목을 앞두고 ‘암표와의 전쟁’이 공연계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이돌 그룹은 물론 해외 팝스타 공연, 유명 연주가 콘서트, 인기 뮤지컬 등이 줄줄이 예고되면서 티켓 수요는 폭발했고 그에 따라 암표상들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프로스포츠 온라인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6237건에서 올해 1~8월엔 25만9334건으로 5년 새 40배 이상 급증했다. 집계 시점이 8월인 점을 감안하면 연말까진 40만 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암표 액수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입장권은 최고 999만원까지 매물로 등장해 큰 논란을 불렀고, 인기 아이돌 NCT WISH의 공연 티켓은 정가 19만8000원짜리가 970만원에 거래돼 사회적 공분을 샀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팬이라는 정성환(63)씨는 “그러잖아도 모바일로 티켓을 예매하게 되면서 야구장을 찾는 게 너무 힘들어졌는데 암표상들까지 표를 싹쓸이하면 우리 같은 중년 세대는 어떡하란 말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오아시스가 16년 만에 내한 공연을 했을 때도 암표가 기승을 부려 큰 논란이 됐다. 오아시스의 오랜 팬이라는 임정빈(37)씨는 “몇몇 암표상들 때문에 평생 좋아했던 밴드를 직접 마주하고 싶었던 팬들만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며 “비싼 값에 암표를 사서라도 보러 갈까 했지만 그 자체가 암표상들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차마 구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암표 때문에 생기는 피해는 단순히 ‘비싼 가격’ 문제만이 아니다. QR 위조로 공연장 입장이 막히는가 하면 환불이 안 돼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가짜 티켓을 사온 관객과 실랑이를 하다 공연 시작이 지연되는 상황도 발생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내부자를 통한 티켓 유출도 심각한 문제다. 최근 인기 가수의 전직 매니저가 티켓을 빼돌려 판매했다는 폭로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썩였던 게 대표적이다.

이홍주 숙명여대 교수는 “암표 확보와 판매만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형 브로커’들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수천 장씩 자동 구매하는 집단이 시장의 공정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최근 K팝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면서 해외에서도 티켓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암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공연·스포츠를 막론하고 ‘표만 나오면 즉시 매진→암표 사이트 활개’의 악순환이 반복되자 정부와 국회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공연법 등 ‘암표 3법’을 올해 정기국회 내 통과시키겠다고 밝힌 데 이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도 지난 20일 암표 판매에 최대 50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공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대 30배까지 과징금 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보다 제재 수위를 훨씬 더 올린 셈이다.

하지만 암표를 근절하려면 보다 근본적이고 제도적인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류종민 변호사는 “경범죄 처벌 대신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보다 실효성이 높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며 “암표 신고자에게 10% 정도의 포상금을 주는 신고포상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도입돼 효과를 본 ‘공식 리셀 제도’ 또한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합법적인 재판매 제도를 통해 시장의 투명성을 높여야 암표 수요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





원동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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