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순 주말 자정 무렵 부산의 분만병원에서 양수가 터져 응급상황에 놓인 산모 전원 요청이 인제대 해운대백병원으로 들어왔다. 당시 해운대백병원에는 남은 병상이 없었다. 전원 전담 간호사가 경남, 대구, 전라도, 충청도 권역까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3시간 동안 수십 곳에 전화를 돌린 끝에 새벽 3시 강원도 병원으로 산모를 전원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다진 해운대백병원 전원전담간호사는 “저 역시 고위험산모였기에 산모의 간절함을 너무 잘 알아서 전화를 계속 돌렸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산모는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했다.
해운대백병원은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집중 치료 상황이 발생하면 전원 전담 간호사 5명이 24시간 응급 대응하며 이른바 ‘산모 뺑뺑이’를 막고 있다. 해운대백병원이 이렇게 전원 전담 간호사를 두고 외부 분만기관의 전원 의뢰를 응대할 수 있는 이유는 ‘모자의료 진료협력 시범사업’(이하 모자의료사업) 대표기관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서울, 경기, 인천 등 9개 권역별로 12개 대표기관을 선정해 중증치료기관 33개소, 지역 내 분만기관 131개소와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정부는 대표기관에 최대 14억, 중증치료기관에 4억8000만~9억5000만원, 지역 분만기관에 1억7000만원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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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전담간호사 5명 인건비 월 2500만원…“전원 시간 단축” 효과
조현진 해운대백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장은 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과거엔 분만기관에서 전원을 요청하기도, 대학병원에서 수용하기도 힘들었는데 모자의료사업 시행 후에는 어떻게든 수용하거나 전원 의뢰를 해결해주려고 한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전원 전담 간호사 5명을 신규 채용해 24시간 3교대로 운용하는 곳은 12개 대표기관 중 해운대백병원이 아직은 유일하다. 전원 전담 간호사 인건비로 월 2500만원가량 소요된다.
해운대백병원으로 온 전원 의뢰 건수는 모자의료사업 시행 전인 2025년 1월~5월 88건에서 시행 후인 6월~10월 135건으로 2배 수준으로 늘었다. 해운대백병원에서 수용한 산모도 같은 기간 51명에서 71명으로 늘었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인 린여성병원 신봉식 원장은 “모자의료사업 시행으로 중증 산모 전원 시간이 단축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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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지속성 담보돼야 신규 채용·시설 확충 가능”
산과는 수요를 창출할 수 없고, 의료수가가 낮아 운영할수록 적자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조 센터장은 “산모 1명당 34만원가량 적자인데 모자의료사업 시행 이후 입원 산모가 연간 600명가량 늘었다”며 “병원 손실이 2억원가량 늘었지만, 정부가 시행하는 모자의료사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병원 경영진이 전원전담간호사 채용 등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모자의료사업은 2027년 12월이면 지원이 끝나는 시범사업이다. 그래서 상당수 병원에서 신규 인력 채용이나 시설 투자를 꺼린다. 신 원장은 “시험관 시술로 다태아 분만이 증가하는 추세라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이 크게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을 두고 의정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고 지속해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업에 참여 중인 경기도 북부권 한 병원의 산부인과 교수는 “의료인력이나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에서는 권역별 네트워크로 묶는 해당 사업은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정부 지원이 지속돼야 다른 병원에서도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장 요구를 반영해 보완점을 찾아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분만 관련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 의료기관끼리 협력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시범사업 기간 보완점을 찾고, 정부가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