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조태용 전 국정원장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계엄의 불법성을 알게 된 경위를 상세히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 전 원장이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를 알고도 국회에 알리지 않는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2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54쪽 분량의 공소장에 따르면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56분쯤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선포 계획을 들었다. 또 조치사항이 담긴 문건을 배포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이 자리에는 윤 전 대통령이 8시쯤 최초 소집한 이른바 ‘8시 멤버’인 한덕수 전 국무총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이 있었다.
조 전 원장은 같은날 오후 9시10분쯤 대접견실로 나오면서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대접견실에서는 한 전 총리가 집무실에서 가져온 5장 분량의 비상계엄 담화문을 자신의 자리로 가져와 전부 읽었다. 조 전 원장은 다른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등이 담긴 문건을 건네받는 모습, 절차상 미비점이 있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조 전 원장은 계엄 선포 후인 이날 오후 11시30분쯤 대통령실에 다녀온 사실을 숨긴 채 국정원장 집무실에서 정무직 회의를 개최했다. 홍장원 당시 1차장이 “원장님 이거 언제 아셨나요?”라고 하자 “뭘 그런걸 물어봐요”라며 회의를 종료했다. 종료 직후 홍 전 차장이 “방첩사에서 이재명, 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다고 한다”고 보고했으나 “내일 아침에 얘기합시다”라며 회피했다.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의 “합동수사본부에서 국정원 직원 파견 요청이 왔다”는 보고에도 “내일 아침에 검토하고 결정하자”고 말했다.
이후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6일 윤 전 대통령과 1분 56초간 통화한 뒤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국회 정보위에 허위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팀은 정치인 체포 지시 등 조 전 원장이 계엄 불법성을 명확히 인식하고도 국회에 알리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판단했다. 불법 계엄의 유일한 통제수단인 국회의원의 계엄 해제안 표결에 있어 필수적 정보를 누락했다고 봤다. 국정원법 15조는 국정원장이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지체 없이 대통령 및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특히 조 전 원장은 2024년 3월말~4월 초순쯤 이미 삼청동 안가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언급을 들었던 것으로 공소장은 적시했다. 조 전 원장은 당시 “외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나라 국격에선 생각할 수도 없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이에 특검팀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장기간의 기본권 침해 등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국정원장으로서 비상계엄을 선포할만한 전시 상황 등이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도 강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