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차 방송인 이금희(60)는 ‘소통 전문가’로 불린다. KBS 아나운서로 ‘6시 내고향’, ‘사랑의 리퀘스트’, ‘아침마당’ 등 대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3만여 개의 삶을 만났고, 라디오 DJ로 15만여 명의 사연을 접했으며, 모교인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22년 6개월간 약 1500명의 학생과 대화를 나눠왔으니 과언이 아니다.
강의를 부탁하며 그를 만난 4050 세대는 이렇게 고백했다. “요즘 2030 세대를 잘 모르겠어요.” 2030 세대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말하며 “선배들과 대화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이금희 아나운서는 “양쪽 세대에 징검다리를 놔야 할 필요를 느껴,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12일 출간된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다산북스)를 기획한 계기다.
“공감은 나를 지지해주는 거죠. 아주 깊은 공감은 나를 살게 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공감하거나 공감받지 못하면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책 제목을 통해 ‘소통’, ‘연대’가 아닌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다. 그는 “소통을 위해선 ‘공감’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Q : 특히 사회생활에 있어 공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A : “젊은 세대 입장에선 당연합니다. 1990년대엔 한 기업에 10명이 입사하면 이중 절반 이상은 그곳에서 정년퇴직했는데, 고용 불안정 시대인 지금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근무하는 곳에 내 사생활을 공유할 만큼 정서적으로 가깝지 않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죠.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Q : 그럼에도 소통과 공감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A : “직장은 물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살아남기 위해서죠. 내가 잘 지내기 위해선 일정 부분은 타인과 소통하시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경조사를 치르거나, 업무에서 도움을 받으면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실 텐데요. 마음의 문을 닫고 고립되기보단 관계 속으로, 사회 속으로 나와서 소통하면 (업무가) 더 편해질 거에요. 선배들은 늘 도와주고 싶어 하거든요.”
책엔 이금희 아나운서가 작가로서 만난 2030 세대 48명의 에피소드가 녹아있다. 이들이 기성세대와 소통하며 겪은 어려움을 직접 듣고, 경우마다 부모·선배가 청년 세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친밀한 관계·사회생활 등으로 상황을 나누어, 에피소드마다 ‘우리 이렇게 생각해볼까요?’라는 제안도 달았다.
‘걱정보다는 격려가 힘이 셉니다’란 제목의 글에선 “나를 찾고 싶다는 젊은이”가 많다며 대학을 다니다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워킹 홀리데이로 해외 경험을 쌓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너를 찾기는 뭘 찾아? 너는 거기 있잖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라고 말하는 기성세대에게 “타인의 삶을 고작 한 조각만 보고 지레짐작하며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한다.
‘강제 커밍아웃’이란 제목의 글에선 직장에서 자신의 후배가 커밍아웃(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주변에 스스로 밝히는 행위)를 한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가 있느냐는 말보다 성별을 특정할 수 없는 “사귀는 사람 있어?” 등의 표현이 좋고, 어지간하면 묻지 말라고 조언한다. 농담처럼 하는 한 마디가 상처에 뿌리는 소금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Q : 책에선 소통 부재에 대한 중장년의 책임을 묻습니다.
A : “토끼와 거북이가 같이 가려면, 토끼가 더 노력해야해요. 토끼는 빠르게도, 느리게도 갈 수 있으니까요. 선배 세대가 후배 세대에게 맞춰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선배 세대도 편해집니다. 제가 어떻게 중장년이 힘든 걸 모르겠어요. 낀 세대로 느끼는 어려움, 고생한 시절의 경험이 있지만, 그건 우리끼리 잘 보듬고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해요. 우리 선배들도 우리에게 그렇게 해줬을 겁니다.”
Q : 선배 세대로서 후배 세대에게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면이 있나요.
A : “나이 차이가 나는 후배 (방송)작가님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소통의 방식과 말투를 바꿨습니다. 절대 사적인 부탁을 하지 않고, 반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요. 이분들이 원하는 건 ‘존중’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태도가 전부에요. 존중하는 태도로 경청해보세요. 책에도 나오는 구절인데, 우리는 소통할 때 상대방의 말보다는 내 기분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채널 ‘마이금희’(구독자 12만 2000명)를 운영하며 자신의 ‘공감 철학’을 전하고 있는 그는 “물성으로 남고, 사람들 마음속에도 오래 남는 것이 책”이라며 “누군가에게 꼭 보탬이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많은 방송으로 공감이라는 능력을 쌓아온 방송인으로서 이금희의 목표는 이제 어떤 장르든 도전하며 롱런(long run)하는 방송인이 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꾸준히 책으로 남기는 것이다. 언제든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공감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