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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역사적 사건은 발판일 뿐…순수한 SF 상상력에 더 관심”

중앙일보

2025.12.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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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삼체' 원작자이자, 2002년 쓴 단편소설 '중국 태양'으로 지난 10월 30일 한·중·일 SF 앤솔러지 '멋진 실리콘 세계'에 참여한 류츠신(62) 작가. 사진 문학동네
‘쓴맛이 나지 않는 물 먹기. 돈 벌기.’ 이 두 가지를 인생의 첫 목표로 세운 한 청년이 있다. 끝없는 가뭄에 시달리며, 저수로에 빗물을 모아 근근이 살아가는 시골의 한 마을. 그곳에 늙은 농부 아버지를 둔 중국인 청년 ‘수이와’다.

수이와의 바람은 인생 목표치고 소박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사는 지구는 이미 기후변화가 재난 수준으로 도래한 곳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청년 수이와가 시골에서 탄광촌으로, 도시로, 우주까지 나아가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중국의 ‘SF 거장’ 류츠신(劉慈欣·62) 작가의 ‘중국 태양’은 이런 상상으로 쓰인 단편소설이다.
한·중·일 STS SF 앤솔러지 '멋진 실리콘 세계' 표지. STS란 Science, Technology and Socety의 약자로, 과학기술사회학을 뜻한다. 사진 문학동네
‘중국 태양’은 현지에서 2002년 발표됐지만, 한국에선 올해 처음 소개됐다. 지난 10월 30일 출간된 SF 앤솔러지 『멋진 실리콘 세계』(문학동네)에서다. 윤여경, 장강명 등 8명의 한·중·일 작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 가능한 과학기술을 쓸 것’, ‘이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판적으로 탐구할 것’ 이 두 조건 아래 쓴 SF 소설을 모은 책이다. 중앙일보는 앤솔러지 출간을 기념해 최근 류츠신 작가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중국 태양’은 위 조건처럼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자 사람들이 두 번째 태양(중국 태양)을 띄워, 강우량을 조절해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의 세계관이다. 수이와는 여러 우연이 겹쳐 이 태양의 표면을 닦는 하청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류츠신은 “‘중국 태양’을 쓰던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이 10년 이상 지속되며 경제가 번영을 향해 질주했던 때였고, 사회 분야 역시 발전을 가속하던 시기였다”고 회상하며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며 평범한 중국인이 마주할 가능성과 희망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 휴고상 수상작인 중국 작가 류츠신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왕좌의 게임' 제작진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 B 와이스가 제작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한국에서 그는 3부작 장편소설 『삼체』(2008~2010)로 이름을 알렸다. 『삼체』는 1966~1976년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소설. 이때 젊은 천체물리학자 예원제가 한 선택이 훗날 지구에 몰고 오는 파문을 그려낸다. 이 과정이 고전 역학 분야의 난제인 ‘삼체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며 이야기는 3부까지 뻗어간다.


류츠신은 이 책으로 2015년 아시아 작가 최초로 판타지·SF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중 하나인 휴고상을 받았다. 『삼체』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시즌 1)는 지난해 3월 공개 이틀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시리즈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현재 시즌 2가 제작 중이다.


Q : 『삼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SF 작가로서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가 있나.
A : “우주 탐사와 개척이다. 인류 문명이 먼 미래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연결되는 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Q : 『삼체』의 흥행으로 중국 SF 문학 시장이 재조명됐다.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엔 중국의 SF 문학이 불모지에 가까웠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A :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줬다. 이 변화는 한때 주변부에 머물던 중국 SF 문학이 빠르게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젊은 SF 작가들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중에선 치밀한 기술 묘사와 거대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 옌시(严曦, 지난해 중국 SF 은하상 최우수 소설상 수상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 속 한 장면. 문화대혁명으로 물리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잃은 천체물리학자 예원제(왼쪽, 진 쳉)가 외계문명인 '삼체'와 접촉해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라고 회신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의 한 장면. 외계인인 삼체인들이 주인공들을 삼체 조직에 포섭하기 위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명이 반복적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묘사했다. 사진 넷플릭스

Q : 『삼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시작된다. 작가로서 앞으로 꼭 다뤄보고 싶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소재가 있다면.
A :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가능성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한 ‘토대’로 사용할 생각이다. 나는 SF를 통해 현실이나 역사를 은유·비판하는 방식보다는 초현실적이고 순수한 SF적 상상력 자체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류츠신은 "한국 SF 소설이 중국에서 번역되는 일이 많지 않다"며 "그럼에도 SF 작가 중에선 김초엽 작가의 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과환세계
SF 작가로서 류츠신은 풍부한 과학지식을 토대로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설계·묘사한다. 1980년대부터 약 30여년 간 중국의 산시성 화력발전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이 경력이 소설에도 묻어난다.

‘중국 태양’에선 “여러 대의 슈퍼컴퓨터로 대기운동 모델에 따른 연산을 거치고, 인공 태양의 에너지를 특정 지점에 가하면 일정 시간 동안 목표 지역의 날씨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며 인공 태양 기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Q : 『삼체』에 이어 『유랑지구』 등이 영상화되고 있다. 원작자로서 특별히 요구하거나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
A : “소설이 영상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보는 건 ‘핵심 SF 아이디어가 충분히 구현되는가’이다. 내 입장에서 이것은 작품의 영혼이며, 작품 매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SF 영상물과 SF 소설의 수용자층은 다르고 영상과 소설은 전혀 다른 예술 형식이다. 영상화 과정에서 수정은 불가피하다.”


Q : 추후 영상으로 공개될 작품이 있다면.
A : “‘구상섬전’(球状闪电)과 ‘꿈의 바다’(梦之海)는 드라마로 제작돼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그녀의 눈과 함께’(带上她的眼睛)는 영화로 만들어진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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