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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별 120개' 초토화…'무한 조사' 지쳐 군 떠나는 장교들

중앙일보

2025.12.02 00:54 2025.12.0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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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3 비상 계엄의 한 복판에 섰던 군 조직은 지난 1년 간 인적 쇄신의 수술대에 올랐다. 국군방첩사령관·특전사령관·수도방위사령관 등 주요 가담자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직무 배제됐고, 그 밖의 인사들에 대한 징계 조치, 새 정부 출범 뒤 이뤄진 대대적 보직 교체 등 ‘계엄 숙군’은 1년 째 현재 진행형이다.



안규백 "마침표 찍어야"…감사관 등 업무 배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5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일 국방부에 따르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방부 감사관·법무관리관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표면적으론 “12·3 불법 계엄과 관련한 인적쇄신”이란 설명이지만, 계엄 해제 뒤에도 서울로 향하는 이른바 ‘계엄 버스’에 올랐던 김상환 전 육군 법무실장(대령 강등) 징계 문제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여권은 당시 계엄 버스가 출발한 것 자체가 2차 계엄 시도의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장관은 취임 뒤 ‘계엄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국방부는 김 전 실장에 대해 지난 25일 근신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김민석 국무총리가 이틀 만인 지난 27일 이를 “엄정 재조사”하라고 지시했고, 국방부는 하루 만에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어 처분을 중징계(1계급 강등)로 뒤집었다.

안 장관이 직접 감사 책임자를 업무에서 배제한 것도 애초에 경징계 처분을 결정한 데 대한 문책성일 수 있다. 당초 국방부는 이달 1일 계엄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 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안 장관은 이날 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고서는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다”며 강도 높은 추가 인사 조치도 예고했다.

김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국방부가 자체 결정한 징계 수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퇴짜를 놓으며 군 내부에선 징계 대상자가 늘어나거나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군 관계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못 한다”며 함구하는 기류다.



소장·준장 인사도 서바이벌 게임 될듯

국방부.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지난해 계엄 이후 직무 정지와 징계로 인한 해임, 보직 교체 등 ‘떨어졌거나 떨어질 별(장성)’만 최소 120개에 이른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9월 대장(4성 장군) 7석 전원 교체라는 강수를 뒀다. 11월 이어진 중장(3성) 인사에선 최전방 6개 군단장을 동시에 교체하는 등 사상 최대폭의 물갈이 인사가 이뤄졌다.

중장 보직자 30~31석 가운데 직을 유지한 ‘생존자’는 권대원(육군 중장·학군 30기)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비롯해 7명에 불과하다. 권 차장은 지난 9월 임명돼 이재명 정부의 발탁 인사로 분류된다. 육군 장성들은 무더기로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물러나게 됐다. 군인사법에 따라 장성은 직위에서 해제된 후 추가 직책을 받지 못 하면 3개월 뒤 전역해야 한다.

여기다 지난해 12월 이후 계엄 사태에 직접 연루돼 수사선상에 올라 직무에서 배제된 장성은 최소 21명인데, 이들 역시 군복을 벗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 가운데 방첩사 소속 장성이 7명으로 가장 많다. 정통한 한 고위 소식통은 “이들은 추후 인사에서 당연히 배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곧 있을 소장(2성)·준장(1성) 인사도 ‘서바이벌 게임’ 수준의 쇄신 인사가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계엄 버스에 탑승한 육군본부 소속 소장·준장 13명은 진급이나 보직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공산이 크다.



계엄 가담자 vs 공적자로 갈라진 군

‘계엄의 본산’으로 지목된 만큼 당연한 수순이긴 하지만, 군을 겨냥한 계엄 사정(司正)은 검찰·특검 수사, 국방부의 감사관실·조사본부 주관 전수조사, 총리실 주도의 헌법존중 정부혁신 TF까지 ‘무한 루프’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 대상만 수 백명”이란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감사관실과 조사본부 인력 20여명, 육·해·공군 감찰실과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등 50여 명이 계엄 조사에 투입됐다.

국방부는 대통령실 지시에 따라 ‘헌법수호’ 장병에 대해 포상과 계급 특진도 진행했다. 군 내부에서 ‘계엄 가담자 대 공적자’로 운명이 엇갈린 셈이다. “(계엄과 관련돼)특진을 해도 꼬리표가 붙는다”며 이를 고사하는 사례마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처음 새 정부 출범 때만 해도 적극 가담자가 아니면 문제가 없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는데, 최근 인사 기조를 보고 국방부나 합참의 직위자들은 장성이나 영관급을 막론하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라고 들었다”며 “계엄과 이로 인한 징계 등을 보며 특히 군의 허리인 영관급 장교나 부사관들이 군을 떠나려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도 “적극적으로 계엄에 가담했던 인원들에 대한 사법 처리는 당연하다”면서도 “인사권을 앞세운 물갈이 기조는 오히려 군의 정치화를 앞당기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유정.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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