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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SF 속 역사적 사건…상상력 넓힐 토대일뿐”

중앙일보

2025.12.02 07:23 2025.12.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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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츠신 작가의 『삼체』는 지난해 동명의 넷플릭스 시리즈로 공개되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의 소설은 과학적 사실과 법칙에 중심을 둔 장르라는 뜻의 ‘하드(Hard) SF’ 장르로 분류된다. 그는 오늘날 SF 작가의 역할에 대해 묻자 “과학의 변화와 발전 속 더욱 경이로운 이야기 거리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과환세계]
‘쓴맛이 나지 않는 물 먹기. 돈 벌기.’ 이 두 가지를 인생의 첫 목표로 세운 한 청년이 있다. 끝없는 가뭄에 시달리며, 저수로에 빗물을 모아 근근이 살아가는 시골의 한 마을. 그곳에 늙은 농부 아버지를 둔 중국인 청년 ‘수이와’다.

수이와의 바람은 인생 목표치고 소박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사는 지구는 이미 기후변화가 재난 수준으로 도래한 곳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청년 수이와가 시골에서 도시로, 우주까지 나아가 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중국의 ‘SF 거장’ 류츠신(劉慈欣·62) 작가의 ‘중국 태양’은 이런 상상으로 쓰인 단편소설이다.

‘중국 태양’은 현지에서 2002년 발표됐지만, 한국에선 올해 처음 소개됐다. 지난 10월 30일 출간된 SF 앤솔러지

『멋진 실리콘 세계』(문학동네·사진)에서다. 윤여경, 장강명 등 8명의 한·중·일 작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 가능한 과학기술을 쓸 것’, ‘이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판적으로 탐구할 것’ 이라는 조건 아래 쓴 SF 소설을 모은 책이다. 앤솔러지 출간을 기념해 최근 류츠신 작가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중국 태양’은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자 사람들이 두 번째 태양(중국 태양)을 띄워, 강우량을 조절해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이다. 수이와는 여러 우연이 겹쳐 이 태양의 표면을 닦는 하청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류츠신은 “‘중국 태양’을 쓰던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이 10년 이상 지속되며 경제가 번영을 향해 질주했던 때였다”며 “가까운 미래 평범한 중국인이 마주할 가능성과 희망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그는 3부작 장편소설 『삼체』(2008~2010)로 이름을 알렸다. 『삼체』는 1966~1976년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소설. 이때 젊은 천체물리학자 예원제가 한 선택이 훗날 지구에 몰고 오는 파문을 그린다. 이 과정이 고전 역학 분야의 난제인 ‘삼체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며 이야기는 3부까지 뻗어간다.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의 한 장면. 외계인인 삼체인들이 주인공들을 삼체 조직에 포섭하기 위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명이 반복적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묘사했다. [사진 넷플릭스]
류츠신은 이 책으로 2015년 아시아 작가 최초 판타지·SF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중 하나인 휴고상을 받았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는 지난해 3월 공개 이틀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시리즈 1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현재 시즌 2가 제작 중이다.


Q : SF 작가로서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A : “우주 탐사와 개척이다. 인류 문명이 먼 미래에 맞게 된 운명과 직결된 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Q : 『삼체』의 흥행으로 중국 SF 문학 시장이 재조명됐다.
A :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줬다. 이 변화는 한때 주변부에 머물던 중국 SF 문학이 빠르게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현재는 젊은 SF 작가들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Q : 『삼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시작된다. 작가로서 꼭 다뤄보고 싶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소재가 있다면.
A :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가능성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한 ‘토대’로 사용할 생각이다. 나는 SF를 통해 현실이나 역사를 은유·비판하는 방식보다는 초현실적이고 순수한 SF적 상상력 자체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류츠신은 풍부한 과학지식을 토대로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설계·묘사한다. 1980년대부터 약 30여년 간 중국의 산시성 화력발전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한 경력이 소설에도 묻어난다. ‘중국 태양’에선 “여러 대의 슈퍼컴퓨터로 대기운동 모델에 따른 연산을 거치고, 인공 태양의 에너지를 특정 지점에 가하면 일정 시간 동안 목표 지역의 날씨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인공 태양 기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Q : 『삼체』 『유랑지구』 등이 영상화됐다. 원작자로서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A : “중요하게 보는 건 ‘핵심 SF 아이디어가 충분히 구현되는가’이다. 내 입장에서 이것은 작품의 영혼이며, 작품 매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구상섬전’과 ‘꿈의 바다’는 드라마로 제작돼 조만간 공개 예정이고, ‘그녀의 눈과 함께’는 영화로 만들어진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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