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화엄경 1270년 지킨 종이, 이제 우리가 지킬 차례

중앙일보

2025.12.02 07:29 2025.12.02 12:2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보라색 닥종이 표지에 변상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내 이제 서원하느니, 미래 세세토록 이 경전이 썩거나 훼손되지 않게 하며…”

신라 승려가 남긴 소망 덕분일까.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신라사경)’은 12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진다. 화엄경을 필사한 이 사경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됐다. 현존 신라사경 중 제작 시기가 명확히 확인되는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1978년 경북의 한 개인에게서 삼성문화재단이 사들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듬해 국보로 지정됐다.

“경덕왕 13년(754년) 8월 1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2월 14일에 ‘화엄경’ 한 부를 완성하였다. 발원자는 황룡사 연기법사로, 첫째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법계의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기를 바란 것이다.”

발견 당시의 국보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755년) 두 축. 축1(아래쪽)은 말린 것을 펼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이 심해 보존처리됐다. [사진 리움미술관]
폭 29.5㎝, 길이 14m, 20m 두 축의 두루마리로 이루어진 신라사경에 적힌 조성기다. 1989년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이 심한 축1만을 보존처리하기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본 전문가와 함께 3개월가량 보존처리했다. 이때 보존처리된 신라사경 축1은 현재 리움미술관 고미술 전시장에서 전시 중이다. 축2는 문화재위원회 결정대로 옻칠한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수장고에 보관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이 미보존 처리본의 앞으로 보존 방향과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 심포지엄 ‘다시 피어나는 경전’이 5일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열린다. 신라사경의 상태와 재질 등 구체적 정보를 처음 공유하는 자리다.

이승혜 동아대 조교수가 8세기 신라 불교에서 사경이 제작된 배경을 설명하고, 후지타 레이오 전 일본 문화청 주임문화재조사관이 일본의 고사경과 그 보존 사례를 소개한다.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이 신라 사경의 현황과 보존 과제를, 스즈키 유타카 일본 국보수리 장황사연맹 명예이사가 원형 보존을 위한 보존 전략을 제안한다.

축2의 끝부분. 1270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종이 위 먹글씨가 선명하다. [사진 리움미술관]
축2는 1270년 전 제작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남유미 실장은 “화엄경 80권을 8축의 두루마리로 만들었는데 현재 남은 건 두 축”이라며 “두루마리를 고정한 나무 심 위아래 수정으로 만든 축수 장식이 붙어 있고 한쪽 장식에 사리가 담겼다. 심이 한 번도 분리되지 않은 걸로 보아 신라 때 원형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사경의 축수에 사리가 담긴 것도 신라사경이 유일하다. 이 사경에 쓰인 닥종이는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이 어려울 만큼 뛰어난 신라의 제지 기술을 보여준다. 두루마리 끝부분에 적힌 제작 기록에는 종이 만든 장인, 표지화 그린 화사 등 제작에 참여한 인물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드물게 남아 있는 완전한 이두식 산문 기록이라는 점에서 국어학계에서도 중요한 자료다.

리움미술관은 남은 축2에 대해 최소한의 보존처리로 원형을 유지해 오고 있다. 남 실장은 “광택이 나는 얇고 고운 종이는 1300년 세월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며 “과거 적극적 보존처리를 했다면 요즘은 작품의 원형 유지를 중시한다. 축2는 종이의 연결부를 손보는 정도의 소극적 보존만 하며 원형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권근영([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