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합의제 기구인 사법행정위원회에 대법원장의 실질적인 인사·예산 권한 등을 이관하는 사법행정 개편안을 확정했다. 민주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가 2일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행사하던 법관 인사권 등 각종 사법행정권을 박탈하고, 신설할 사법행정위에 부여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임기 3년의 13명의 사법행정위원 중 사법부 몫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법관 1명과 전국법원장회의가 추천하는 법관 1명,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천하는 법관 2명 등 총 4명뿐이다. 헌법재판소장 등 외부 기관이 추천하는 위원 9명은 신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비(非)법관을 추천하도록 했던 초안에 삼권분립 위배 논란이 일자, 법관과 비법조인 추천 가능성을 함께 열어둔 것이다.
사법행정위원장은 전현직 법관이 맡을 수 없도록 했다. 사법행정위는 법원의 인사·징계·예산·회계·시설·통계·등기·가족관계등록·공탁·집행관·법무사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당초 심의·의결 대상을 ‘사법행정 전반에 걸친 주요 사항’으로 폭넓게 규정한 초안보다 구체화했지만, 사실상 대법원장이 총괄하던 사법행정 사무의 대부분을 사법행정위 권한으로 바꿨다. 대법원장이 갖던 법관 인사의 핵심인 평정 기준 마련 권한과 법관 외 법원공무원·재판연구원(로클럭) 임명권도 사법행정위가 행사하도록 일원화했다.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사법행정 사무만을 관장한다.
법관 임명·연임·보직 등 인사는 사법행정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한다. 헌법 104조 3항(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이 정한 절차를 밟기 전 사전 심사를 받도록 한 셈이라 대법원장의 실질적 인사권은 박탈되는 셈이다. 현행법도 법관인사위원회가 사전에 심의하도록 규정하지만, 의결 권한은 없다. TF는 “사법행정위의 심의·의결 사항에 대한 대법원장의 거부권을 규정해 위헌 소지를 해소했다”(임지봉 서강대 교수)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대법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법행정위가 다시 심의·의결할 수 있다’고만 규정해 거부권 행사의 의미를 제한했다.
TF는 헌법 101조 1항(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을 근거로 한 위헌 주장에 대해 “자가당착적 궤변”(이건태 의원)이라고 반박했다. 판사 출신 김승원 의원은 “사법행정위에 외부인이 더 많다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TF는 ▶현행 자문기구인 전국법관대표회의 등 판사회의를 법제화하고 ▶판사회의에서 법원장 후보를 선출하도록 하는 법 개정도 추진한다. 또, ▶대법관 퇴임 후 5년간 대법원 사건 수임을 금지하고 ▶법관 정직 처분을 최대 2년 이하로 상향하며 ▶탄핵소추 중 법관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 탄핵 결정 확정 때까지 임기가 계속 중인 것으로 보도록 하는 변호사법·법관징계법 개정안도 내놨다. 세 법안은 3일 발의할 예정이다.
속전속결로 사법 시스템을 바꾸는 데 당내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공론화와 숙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무조건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부장판사를 겨냥해 사법부를 때리는 실익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