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tvN ‘태풍상사’가 지난 11월 30일 10.3%(16부, 닐슨코리아)로 막을 내렸다. 암울한 시대에도 자신의 위치를 묵묵히 지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공감을 얻으며, 자체 최고 기록으로 최종화까지 관심을 받았다.
극 중 이준호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세상 즐거움을 누리는 ‘오렌지족’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설립한 회사 태풍상사의 몰락을 막아내는 단단한 리더로 거듭나는 강태풍의 일대기를 그렸다. 마지막 화에서 태풍상사는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고, 2001년에는 활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2일 오후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호는 “준비와 촬영까지 1년 4개월이란 긴 시간을 쏟은 작품이라 여운이 굉장히 길다. 10%를 넘긴 시청률에 정말 감사하고 태풍이를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에겐 MBC ‘옷소매 붉은 끝동’(2021~2022·이하 ‘옷소매’), JTBC ‘킹더랜드’(2023)에 이은 3연속 히트작으로 기억될 ‘태풍상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A : “IMF 시절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보기 드문 16부작이라는 긴 호흡으로 그 시대를 어떻게 버텼는지 잘 보여주고 싶었다.”
Q : 어린 시절 IMF를 기억하나.
A : “초등학생이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누나와 둘이 지내거나 이웃 아주머니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그 시절은 너무 힘들었지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잘 버텨냈다’고 말씀하셨다.”
Q : 강태풍의 매력은.
A : “‘내 20대에 이런 솔직함과 추진력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부족함을 숨기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나와 달리, 태풍은 사랑도 슬픔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Q : 1인 기획사를 운영하는 ‘사장’으로서 태풍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A : “태풍은 나와 달리 추진력이 있다. 나는 일단 천천히 고민하고 계획하는 스타일인데, 태풍은 보이면 바로 돌진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닮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Q : 1997년대 고증은 어떻게 준비했나.
A : “쿨 이재훈, SBS 드라마 ‘미스터 Q’(1998)의 김민종 스타일을 참고했다. 당시 유행했던 옷들은 사비로 사거나 제작하기도 했다. 서울 사투리는 웃기지 않은 선에서 조절했다. 야외 촬영에서는 현대 물건들이 보이지 않도록 각도·시간을 계산하며 찍느라 스태프들이 고생했다.”
Q : ‘오렌지족’ 표현도 화제가 됐는데.
A : “드라마에서 춤과 노래를 한 건 처음이라 재미있었다. 당시 유행 음악과 스타일로 안무를 만들었고, 실제 1990년대 압구정 문화를 담은 영상도 많이 찾아봤다. 박진영 형이 21세 때 ‘코란도 타고 30만원짜리 옷 입고 다닌다’는 인터뷰도 봤다.”
Q : 악역 표현준(무진성)과의 호흡은 어땠나.
A : “만나면 으르렁거리는 톰과 제리 같은 설정이다. 주먹을 쓰기보다 말로 싸우는 느낌이랄까. 촬영하면서 무진성의 입술만 눈앞에 너무 크게 보여서 컷 하면 서로 웃음 터지기도 했다.”
Q : ‘표현준이 또 훼방’이라는 반복 전개에 답답하다는 반응도 있다.
A : “태풍상사가 망하고 다시 일어나는 6개월~1년 정도의 시간을 16부에 담은 거라 고난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IMF라는 시대 자체가 1차 빌런이었고, 표현준이라는 악역을 통해 태풍의 성장 드라마를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결국 태풍상사가 위기를 극복하고 상까지 받는 회사로 성장해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점이 좋았다.”
Q : ‘태풍상사’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A : “나를 가장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다. ‘킹더랜드’에서 재벌, ‘옷소매’에서 왕을 연기한 뒤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힘을 빼고 연기하면서 또 한 단계 나아간 느낌이 있다. 어려울 때 함께 이겨낼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Q : 차기작에 대한 기대는.
A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캐셔로’가 26일 공개된다. 3연타 성공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주인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작품이라 시청자 반응이 궁금하다.”
Q :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A : “이 일은 단순히 연기와 노래를 좋아한다고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쉽지 않은데도 계속 하는 건 재미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로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경험이 값지다. 시청자 반응이 좋으면 쾌감도 있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나온 작품을 시청자들이 찾아 보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