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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 이젠 맘껏 사랑하렴"...영화 '세계의 주인' 주연 서수빈

중앙일보

2025.12.06 21:30 2025.12.0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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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트라우마를 딛고 꿋꿋이 살아가는 여고생 이주인을 연기한 신인 배우 서수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세계의 주인'(윤가은 감독)이 16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가장 흥행한 한국 독립예술 영화가 됐다.

10월 22일 개봉 이후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꾸준한 입 소문이 만들어낸 결과다. 영화는 지난 1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상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 제작자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란 의미다.

해외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9월 한국 영화 최초로 토론토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걸 시작으로, 낭뜨 3대륙 영화제 대상, 핑야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관객상,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발랄하고 인기 많은 여고생 이주인(서수빈)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친족 성폭력 피해자였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성폭력 피해자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달리, '사건'이 아닌 '사람',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밝고 씩씩한 여고생 이주인(서수빈)이 전교생이 모두 동의한 서명에 이름적기를 거부하며 생기는 일을 그렸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은 밝고 씩씩한 여고생 이주인(서수빈)이 전교생이 모두 동의한 서명에 이름적기를 거부하며 생기는 일을 그렸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주연 서수빈(24)은 자신이 연기한 이주인 그 자체다. 아이돌 연습생 출신 답게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태권도도 잘 한다. 밝고 솔직한 성격도 똑같다. 윤 감독이 어떤 작품에도 출연한 적 없는 '생짜' 신인을 선택한 이유다. 서수빈은 주인의 상처 받은 내면까지 세밀히 표현해내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제협상 신인배우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올해 최고의 '신성'이란 평가를 받는 그를 지난 3일 서울 한남동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홍해 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윤 감독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하기 전날이었다.


Q : 윤 감독의 팬이었다고.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거치며 진로 고민을 하던 나를 연기의 세계로 이끈 영화가 감독님의 '우리집'(2019)이다. 영화의 감동 때문에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게 됐다. '세계의 주인' 2차 오디션까지 간 것 만도 놀라운데, 감독님과의 심층 면접인 최종 3차에서 합격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나를 배우로 이끈 감독의 영화로 데뷔하다니, 난 우주 최고의 행운아다(웃음)."


Q : 캐릭터 준비가 어렵진 않았나.
"주인이가 그냥 나여서 어렵지 않았다. 감독님도 '주인은 이미 너 안에 있다'고 했다. 지하철을 탈 때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늘 주인이를 머리 속에 넣고 살았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오른쪽)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꿋꿋이 살아가는 내용의 작품이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Q : 현실적인 여고생 체형이란 반응이 많다.
"다이어트 하겠다고 했다가 감독님한테 혼났다. 그래서 열심히 먹고 운동했다. 감독님이 '주인의 종아리와 체형이 너무 좋았다'는 영화 관계자 말을 전해줬다. 나도 스크린에 비친 튼튼한 내 몸과 다리가 마음에 들었다. 일부러 살 찌운 것 같다는 말들이 많은데, 24년 간 준비돼 있던 내 몸이다(웃음)."

주인은 전교생이 참여한 '성범죄자 거주지 복귀 반대' 서명을 홀로 거부한다. '성폭력은 평생 씻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문구에 동의할 수 없어서다. 이를 계기로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이 밝혀진 주인은 주변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 힘겨운 일상을 이어간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밝고 씩씩한 여고생 이주인(서수빈)이 전교생이 모두 동의한 서명에 이름적기를 거부하며 생기는 일을 그렸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Q : 주인의 내면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친족 성폭력 관련 책과 증언 영상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일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됐다. 트라우마 때문에 움츠려든 사람도 있지만, 주인처럼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상처를 극복하고 '자기 세계의 주인'이 돼가는 주인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시종일관 담담한 듯 보였던 주인의 내면이 강렬하게 표출되는 장면이 있다. 세차장 신이다. 자동 세차를 하는 동안 차 안에서 주인은 엄마(장혜진)에게 상처와 분노, 서러움을 절규하는 몸짓으로 토해낸다. "내 얼굴만 보고 알았어야지! 내 말 믿어줬어야지! 어떻게 내가 그런 일을 당하게 만들어! 그렇게 오랫동안!"


Q : 세차장 신 찍을 때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 촬영장에 도착하니 긴장감 때문에 몸이 얼어붙더라. 감독님 주문대로 몸을 크게 움직여 보며 감정을 쌓아갔다. 마지막 테이크 전, '세상의 모든 주인이들이 너무나 원했을 이 순간, 들어가 보자'는 감독님 말에 감정을 주체 못할 정도로 몰입이 됐다. 찍고 나서 몸이 많이 아팠다."


Q :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관람 평은.
"'영화가 끝난 뒤 극장에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는 관람 평이다. 내가 '우리집'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다.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고마워. 이주인'이란 마지막 익명 편지처럼 많은 이들이 주인이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트라우마를 딛고 꿋꿋이 살아가는 여고생 이주인을 연기한 신인 배우 서수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트라우마를 딛고 꿋꿋이 살아가는 여고생 이주인을 연기한 신인 배우 서수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주인 캐릭터에서 빠져 나왔나.
"못 떠나 보낼 줄 알았는데, 최근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속으로 '이주인,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넸다."


Q : 주인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능 끝나고 열심히 놀고 있을 것 같다. 엄마, 동생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도 하겠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랑 앞에서 늘 주저하던 주인이와 연애 얘기를 나누고 싶다. '연애 좀 살살 하지'란 대사처럼 주인이가 뜨겁게 연애 했으면 좋겠고, 잘 할 것 같다."



정현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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