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美 신생아 B형간염 접종 권고 폐기?…의료계 "비과학적 결정" 반발

중앙일보

2025.12.06 23:27 2025.12.06 23:4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미국 백신자문위원회(ACIP)가 모든 신생아에게 출생 직후 B형간염 백신을 접종하도록 권고한 기존 지침을 34년 만에 철회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좋은 결정”이라고 환영했지만, 의료계는 “비과학적 결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1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임 치료에 대한 발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ACIP는 지난 5일(현지시간) 모든 신생아에 대한 B형간염 백신 접종 권고를 폐기하는 안을 8대 3으로 가결했다. 새로운 지침은 산모가 B형간염 양성이거나 감염 여부를 모르는 경우에만 출생 직후 접종하도록 권고했다. 산모가 B형간염 음성인 경우에는 의료진과 상의해 접종 여부를 결정하고, 생후 2개월부터 접종을 시작하도록 했다. ACIP는 “대부분의 영아에서 감염 위험이 매우 낮으며, 과거 신생아 대상 백신 안전성 연구가 불충분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B형간염은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데 출생시 산모로부터 신생아에게 전달되는 수직 감염이 주된 감염 경로다. 간경변, 간암의 주요 원인으로 신생아 시기에 감염될 경우 만성화될 위험성이 높다. 만성 B염간염 환자는 일찍 사망할 확률이 70~85%다. 이런 이유로 미 보건당국은 1991년부터 모든 신생아에 대해 출생 직후를 포함해 총 3차례 기초 접종을 권고해왔다. 산모 본인이 감염 여부를 모르거나 최근 감염됐다면 산전 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본부에서 백자문위원회(ACIP) 회의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신생아 B형간염 접종 지침이 34년 만에 뒤바뀐 배경에는 ‘백신 회의론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케네디 장관은 지난 6월 기존의 ACIP 위원 17명을 한꺼번에 해임한 뒤 자신과 성향이 맞는 인사들로 재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한 것도 케네디 장관의 의견을 수용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케네디 장관은 오랫동안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백신 반대 운동을 이끌어왔다.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본부 밖 시위에서 한 사람이 '백신은 생명을 구한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AP=연합뉴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 최대 의사 단체인 미국의사협회(AMA)는 성명을 내고 “수십년간 구축된 B형간염 백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훼손하는 조치이자 무모하고, 비과학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의사단체와 일부 주정부 보건당국도 기존 권고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짐 오닐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 직무대행에게 기존 지침 철회를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ACIP의 새로운 권고안은 CDC 승인을 거쳐 최종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의사 출신인 공화당 소속 빌 캐시디(루이지애나) 상원의원도 X(엑스)에 “수십 년간 B형간염 환자를 치료해 온 간 전문의로서, 이번 백신 일정 변경은 실수”라며 “신생아 권고안을 폐기하면 결국 감염이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B형간염 감염률은 백신이 널리 보급되기 전 인구 10만명 당 약 9.6건에서 2018년 약 1건으로 약 90% 감소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찬성 입장을 밝히며, 추가적인 백신 접종 일정 개편을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날 트루스소셜에 “매우 좋은 결정을 내렸다”며 “대부분의 아기는 주로 성행위나 더러운 바늘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인 B형 간염에 걸릴 위험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미국의 소아 백신 일정은 완전히 건강한 아기들에게 72회의 ‘주사’를 요구해 왔는데, 이는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훨씬 많고, 필요 이상”이라며 “그래서 나는 미국의 백신 일정을 과학과 상식이라는 황금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라는 대통령 문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위문희([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