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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정면도전, 분열 겨냥" 美 새 국가안보전략에 유럽 발칵

중앙일보

2025.12.07 00:07 2025.12.0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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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케네디 센터 명예 시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유럽에 대한 전례 없는 비판을 쏟아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유럽 주요국들이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밀착할지, 반대로 미국 의존성을 덜어낼지 유럽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일 ‘문명 소멸(civilizational erasure)’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유럽의 현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한 트럼프 행정부의 NSS가 발표되자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즉각 “어떤 국가나 정당의 조언도 받을 필요가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면서도 “표현의 자유, 독일 내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사회를 조직할지에 관한 문제 등은 미국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럽의회 대미관계위원장 브란도 베니페이(이탈리아) 의원은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문구로 가득하다”며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내용은 노골적인 개입”이라 규정하며 “유럽연합(EU)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슈피겔 등 유럽 언론도 NSS가 “EU 분열을 겨냥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미국이 유럽 내 우익 정당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유럽 국가들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EU를 약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NSS는 EU에 대한 강한 불신과는 반대로 그 대안 세력 격인 유럽 내 우익 정당에 대해선 높이 평가했다.

유럽연합(EU) 본부.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분열 전략은 본래 러시아가 오랫동안 서방 세력에 대항해 시도해온 전략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러시아의 전략을 차용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뉴욕타임즈(NYT)과의 인터뷰에서 “새 NSS는 러시아 국가 안보 문서에서 볼 수 있는 형식과 유사하다”며 “NSS가 러시아의 이념적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했다.

NYT 등 주요 외신은 유럽을 미국 전략 자산에 무임승차하는 존재로 판단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이 이번 NSS로 공식화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우선주의 노선에 있어 유럽에 대한 지원은 재정 부담만 된다는 인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전반에 깔려있다. JD 밴스 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이어왔다.

아울러 유럽에 대한 이번 메시지는 미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보호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은 그간 메타, X(옛 트위터) 등 미국 기업에 디지털서비스법(DSA)을 근거로 강경한 제재를 가해왔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X의 계정 인증 표시와 광고 정책이 DSA에 어긋난다며 1억2000만 유로(약 2061억원)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국은 유럽이 자국 디지털 산업 육성을 위해 불합리한 제재를 휘두른다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최대 동맹국 미국의 돌발 행보에 유럽의 미국 의존도 탈피 움직임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러시아의 계속된 위협에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압박을 가하자 유럽 주요국은 군비 증강, 징병제 부활 등 자강(自强) 노선을 확대해왔다.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 예산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인 2022년 510억 유로(약 87조6100억원)에서 1520억 유로(약 261조1000억원) 수준으로 3배 인상할 방침이며, 프랑스는 2035년까지 병력을 5만명 확충하기로 해 준징병제 성격의 복무 제도 도입을 공언했다.



전민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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