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알파고’가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12번째 선수로 뛴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 대표팀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 대비해 AI 기반 경기력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가동한다.
BBC는 최근 “이미 엘리트 축구 무대에서 AI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페널티킥 분석, 선수 컨디션 및 부상 관리, 전술 분석을 통한 상대 약점 파악에 도움을 주는 잉글랜드 전략의 핵심 기술”이라고 전했다.
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의 벤치에는 데이터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함께 앉는다. 이들은 외부에서 구입한 분석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협회(FA)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도 운용한다. 복잡한 데이터를 코치진과 선수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제시하는 게 이들의 핵심 역할이다. AI 기술과 축구 사이의 통역사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페널티킥 혁신’이다. FA의 분석 책임자 리스 롱은 “월드컵 때는 상대국 47개국 선수들이 16세 이후 찼던 페널티킥 정보를 활용한다. 과거에는 한 팀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닷새가 걸렸지만 이젠 AI를 이용해 5시간이면 할 수 있다”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대 선수의 페널티킥 성향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앞두고 열린 커뮤니티실드 경기에서는 리버풀 선수들의 페널티킥 선호 방향이 적힌 크리스털 팰리스 골키퍼의 물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크리스털 팰리스는 승부차기에서 3-2로 이겼다.
AI는 키커에게도 도움을 준다. 키커에게는 상대 골키퍼가 주로 어떤 방향으로 몸을 던져 막는지 알려준다. 롱이 FA에 합류한 이후 잉글랜드의 페널티킥 기록은 크게 향상됐다.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표였던 코너 코디는 “유로 대회 직전에 큰 회의를 했다. 선수별로 어디로 차는 게 좋겠다는 정보를 줬다. 방향을 알려주니 오히려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잉글랜드는 2020년 이후 27번의 페널티킥에서 23번 성공했다.
최근 들어 AI 축구 소프트웨어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경기 중 수만 건의 움직임과 데이터를 추적하고, 전술 패턴을 읽어낸 뒤 이를 비디오와 그래픽으로 시각화해서 하프타임에 선수단에게 제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상대가 어떤 타이밍에 강한 압박을 시작하는지, 선수들이 서 있는 위치에서 균형이 무너진 지점은 어디인지, 어느 구역에서 공을 잃을 때 실점 확률이 높은지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프타임 10분은 ‘축구 알파고’의 맞춤형 훈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BBC는 “최근 월드컵에서는 스페인·프랑스·아르헨티나가 더 좋은 성과를 냈지만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잉글랜드·독일·미국”이라고 평가했다.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의 엘리스테어 맥로버트 교수는 “잉글랜드는 모든 연령대의 대표팀에 데이터 엔지니어, 분석가들이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훈련장인 세인트 조지스 파크에는 터치스크린과 3D 전술 보드가 갖춰진 ‘인터랙티브 회의실’도 새로 지어졌다.
인공지능은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도 활용된다. 잉글랜드 대표팀 식당에는 ‘웰빙존’이 있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매일 아침 수면·통증·피로도 등을 입력한다. 이런 정보는 실시간 분석돼 코치, 물리치료사, 의료진 등에게 제공되고 훈련 강도와 식단, 회복 프로그램에 적용된다.
이 같은 AI 기술은 국가 간의 축구 실력 차를 더 벌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아이슬란드의 분석가 톰 구달은 “잉글랜드는 막대한 자원과 자금, 인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처지와는 극과 극”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23년 12월 기술본부 산하에 전임지도자, 피지컬 트레이너, 의무 트레이너, 분석관, 연구원들이 통합된 하이퍼포먼스그룹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김지훈 팀장은 “잉글랜드 대표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성인 대표팀도 유수의 전력 분석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향후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국제적인 트렌드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축구 관련 직업을 없애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이에 대해 롱은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코치의 결정을 보조하는 도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