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을용의 아들 이태석(23·아우스트리아 빈)이 쑥쑥 자라고 있다. 1년 전 이맘때만 해도 이태석은 갓 태극마크를 단 신인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쿠웨이트전을 통해 국가대표팀 평가전(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꾸준히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아버지처럼 월드컵 무대를 밟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거의 이뤘다. 이태석은 올 해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가장 눈에 띈 수비수다.
이태석은 대표팀 주전 왼쪽 풀백 자리를 굳혔다. 올해 홍명보 팀이 치른 13차례 A매치에서 12차례나 출전하며 탄탄한 수비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달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나와의 올해 마지막 평가전(1-0승)에선 대표팀 데뷔골도 터뜨렸다. 이강인(24·파리생제르맹)의 패스를 헤딩 결승골로 연결했다.
짧은 시간 내 국가대표급 수비수로 진화한 비결은 ‘유럽 경험’이다. K리그1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던 이태석은 지난 8월 오스트리아 아우스트리아 빈으로 이적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은 최대한 살리고, 약점을 빠르게 보완하는 전략을 택했다. 아버지처럼 왼발킥이 주무기인 그는 훈련과 경기마다 고감도 킥 감각을 뽐냈다. 덕분에 단숨에 주전 풀백과 전담 키커 자리를 꿰찼다. 이적생에게 키커 자리를 내주는 건 유럽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이태석은 지난 7일 2025~26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16라운드 볼프스베르거전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하며 ‘골 넣는 수비수’ 면모를 뽐냈다. 시즌 2호 골이다. ‘이젠 아버지보다 킥이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직 멀었지만, 조만간 뛰어넘겠다”며 웃었다. 이을용도 “아직은 내가 더 킥이 좋다”면서 “나를 빨리 뛰어넘기를 바란다. 이을용 대신 ‘태석이 아빠’로 불리고 싶다”며 응원했다.
이을용 부자는 둘 다 오른손잡이다. 그러나 야구처럼 축구에서도 왼발잡이가 희소성이 있고 주전경쟁 등에서 유리하다.
그라운드 밖에선 소통에 힘썼다. 오스트리아 빈 지역이 독일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사실을 안 이태석은 한국을 떠나면서 독일어 교재를 잔뜩 챙겼다. 이을용은 “영어를 써도 되는데, 경기 중 동료와 더 빠르고 디테일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독일어를 배운다고 했다. 내가 유럽(튀르키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뛰던 시절엔 축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기특하다. 언어 장벽을 깨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축구가 가능하다”며 아들을 칭찬했다.
이태석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꿈만 꿨던 일들이 올해 현실이 됐다. 유럽으로 이적도 하고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경기를 뛸 줄은 몰랐다”면서 “월드컵 무대를 누빈 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 내년에도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왼발의 달인’으로 통한 이태석의 아버지 이을용은 A매치 51경기에 출전했다. 두 차례(2002·06년) 월드컵에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