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의 하식애(河蝕崖).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가파른 절벽인 하식애에는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부부와 지난 2월 태어난 새끼 3마리가 살고 있다. 수리부엉이는 한번 터를 잡으면 평생을 그곳에서 사는 습성이 있는데 부부가 몇 해 전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뒤 번식에 성공했다.
하식애 위에는 야산이, 아래에는 유채꽃밭이 조성돼 있다. 그 앞에는 금호강 퇴적지가 형성돼 물이 얕게 흐른다. 이날 오전부터 쇠오리, 일락오리, 백로 등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금호강에 머물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팔현습지는 겨울이면 큰 기러기 등 멸종위기종인 겨울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대구환경운동연합 등에 따르면 팔현습지에는 담비 등 25종류의 법정보호종이 서식 중이다. 대구 동구와 수성구 고모동을 이어주는 금호강 일대에 형성된 팔현습지는 대구 3대 습지(안심습지·달성습지·팔현습지) 중에서도 주민들의 생활터와 가장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높은 생명다양성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이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
이곳에 산책로 1.5㎞와 주민들이 다닐 수 있는 886m의 보도교를 설치하는 사업을 두고 3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 산하기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2021년 304억원을 들여 금호강 정비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금호강 일대 4㎞ 구간의 제방을 보강하고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 1.5km와 보도교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보도교와 산책로가 팔현습지를 가로 지으면서 생태계 단절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사업은 2022년 3월에 시작해 이미 완공이 돼야 했지만 환경보호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다.
앞서 낙동강유역환경청은 2021년 사업 전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해 법적보호종 3종(수달·삵·원앙)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환경보호단체들이 나서 조사한 결과 9종을 발견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현재까지 발견한 법정보호종만 25종이다.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대구지방환경청에서 2023년 11월 ‘거짓·부실검토전문위원회’를 열고 조사가 제대로 진행됐는지 살펴봤다. 다만 전문가 과반수가 “시간이나 계절적인 차이 등이 있을 수 있어 평가가 부실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환경청의 조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환경청과 환경단체의 조사결과가 다른 만큼 논란이 이어지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이에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올해 3월 주민설명회를 열고 보도교 공법과 모양 등을 바꾸겠다고 제안했다. 동물 서식처에서 35~60m 보도교 거리를 떨어뜨리고 담수어를 보호하기 위해 다리를 만들 때 기둥 사이 거리를 길게 확보하는 시공방식 등으로 변경하는 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공법을 바꾸면서 보도교 길이도 836m에서 886m로 50m 늘어났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환경보호단체와 3년 동안 논의를 해왔다”면서도 “사업 절차상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업을 중지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도교 설치에 찬성하는 주민들도 ‘금호강 산책로 연결 주민추진단’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박춘식 단장은 “이 사업은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 피해를 막고, 제방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재해예방사업이 중심이다”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보도교가 함께 설계됐고 이는 필수 기반시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경파괴’라는 단순한 말만으로 사업을 철회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환경단체에서는 낙동강유역환경청의 변경안 또한 생태계 단절을 유도한다는 주장이다. 팔현습지를 국가습지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생태계 훼손이 없도록 보도교 대신 인근 강촌햇살교를 넓혀서 'ㄷ자'로 설계한 산책로를 환경청에 추가로 제안했다”며 “팔현습지는 야생의 생물들의 ‘숨은 서식처’로서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만큼 국가습지로 지정하는 등 개발이 아닌 복원과 절대적 보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