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에 걸친 양양 정원 시공 일을 마쳤다. 정원 시공은 늘 날씨가 변수다. 영동의 겨울은 맹렬하게 춥지는 않지만, 바람의 영향이 매우 크다. 봄철, 간성과 양양 사이에 부는 양간바람뿐 아니라 겨울바람은 종종 강풍으로 불어온다. 하필이면 이 바람이 부는 시기에 시공이 겹쳐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바람이 사람만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식물에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봄과 여름에 부는 바람은 식물의 증산작용을 촉진시켜 이제 막 물을 빨아들인 식물을 마르게 한다. 그래서 바람이 지속적으로 부는 곳에서는 식물의 성장이 느려지고 생존이 어려워 정원사들이 가장 꺼리는 장소다. 하지만 그래서 바람이 없다면 식물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까 싶지만, 이건 좀 다르다.
식물의 일생은 씨앗을 맺어 퍼트리는 데 집중돼 있다. 벌·나비가 씨앗을 퍼트리는 식물군도 있지만 지구 식물의 10~30%는 바람을 이용한다. 바람을 이용하는 식물 중 70%가 온대 기후에 집중돼 있다. 겨울과 봄철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바람을 타는 데 유리한 씨앗들의 형태는 다양하다. 민들레는 솜털을 씨앗에 붙여서 그 가벼움으로 약 10㎞를 날아간다. 헬리콥터 씨앗이라고도 불리는 양날개를 지닌 단풍나무의 씨앗도 5㎞ 정도를 날아가고, 먼지처럼 가벼운 일부 난과 식물은 수십㎞의 비행도 가능하다. 태풍이나 강풍이 불면, 그 거리가 200㎞에 이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없다면 지구의 많은 식물은 씨앗을 맺거나 퍼트리는 일이 어려워 생존이 위험해진다. 힘겨운 바람이지만, 이 바람을 타고 새로운 생명의 터전을 찾아가는 셈이다. 알면 알수록 지구의 생명체는 기후를 잘 이용하며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삶도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 너무나 명백한 이 사실을 잊고 지내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