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토안보부(DHS)는 23일(현지시간)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H-1B 취업 비자 발급과 관련 기존의 ‘무작위 추첨제’를 폐지하고, 고임금 노동자들에게 가중치를 부여한 ‘차등 추첨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이민 규정을 최종 확정했다.
정부는 지난 9월 조지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에 대한 ‘구금 사태’ 이후 H-1B 비자에 한국인 쿼터를 신설하는 방안 등을 미국 측에 제안했지만, 해당안은 수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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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1.3억은 15%…2.4억은 61%
중앙일보가 이날 확보한 303페이지에 달하는 미국 이민국(USCIS)의 H-1B 비자 발급 최종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청자들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해 비자를 발급했던 방안이 폐지된다. 대신 직군별로 4단계의 임금 수준을 지정해 단계별로 차등화된 추첨 확률을 부여하기로 했다.
임금이 낮은 1단계에 포함되면 일종의 ‘추첨표’ 1장이 부여되고, 4단계 근로자에게는 4장의 추첨표가 돌아간다. 4단계의 고임금 근로자가 뽑힐 확률이 산술적으로 4배가 된다는 뜻이다.
2024회계연도 기준 컴퓨터 관련 업종의 경우 1단계 근로자의 연간 급여는 8만9253달러(1억 3021만원), 4단계는 16만3257달러(2억 3894만원)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미 이민 당국의 시뮬레이션 결과 1단계 근로자가 비자를 받을 확률은 15%인 반면, 4단계 근로자는 61%로 높아졌다. 또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근로자의 경우 6만5000명을 뽑는 일반 H-1B 비자 추첨 외에 별도 2만명의 추첨에 재응모할 수도 있다.
이민국은 이같은 안을 오는 29일 연방 관보에 게재한 뒤 내년 2월 27일부터 발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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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수수료’ 1억 4575만원 별도
논란이 됐던 H-1B 비자 발급 수수료 10만 달러(1억 4575만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1000달러였던 수수료를 100배 올린 10만 달러로 인상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비자 장사’ 논란을 자초했지만, 이민국은 이를 그대로 최종안에 올렸다.
같은 날 미 연방법원도 H-1B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인상하는 조치에 대해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에 포함된다”며 미 재계와 대학협회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이민국은 최종안에서 “10만 달러의 수수료와 높은 임금을 지급할 자원이 부족한 기업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다면 미국인을 찾아 고용하는 대안을 모색하면 된다”고 했다.
매튜 트라게서 이민국 대변인도 “기존의 무작위 H-1B 비자 등록 선정 방식은 미국 고용주들이 미국인 근로자보다 낮은 임금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려는 목적으로 악용돼 왔다”며 “가중치 선정 방식은 더 높은 임금과 숙련도를 갖춘 외국인 근로자를 신청하도록 장려함으로써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아 구금 사태를 언급하며 “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미국 근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던 말과도 온도차가 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가령)TSMC가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처럼 복잡한 공장을 건설해 운영하려면 수천명의 외국인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난 그들을 환영하겠다”며 “나는 보수진영 친구들과 마가(MAGA)를 사랑하지만 외국인 전문인력을 수용하는 게 곧 마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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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학생 직격탄…“밀러의 숙원 실현”
외교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이번 조치로 고임금을 받는 최고위 경력직만 H-1B 비자를 발급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정책재단(NFP)의 분석에 따르면 H-1B 신청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미국의 핵심 첨단 기업들이다. 또 미국 내 컴퓨터와 인공지능(AI) 관련 업종의 대학원생 중 약 70%가 외국인이다. 이들이 미국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선 H-1B 비자가 필요하지만 신규 채용 인력에게 최고 등급의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이민국의 최종안에도 외국인 유학생의 H-1B 비자 신청 중 약 90%가 노동 시장 경험 부족으로 인해 1단계 또는 2단계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포브스는 “이번 결정은 당장 유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된다”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오랜 숙원을 실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밀러는 과거 상원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할 당시 유학생들이 10년간 H-1B 비자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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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사태’ 후속조치는?…워킹그룹 가동
한·미는 조지아 사태 이후 공동 워킹그룹을 가동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시 구금된 450명의 근로자 가운데 한국 국적자 317명은 대부분 회의 참석과 계약 등을 위한 단기 비자인 B-1이나 전자여행허가증인 ESTA로 입국했다가 구금됐다.
양국은 현재 B-1 비자의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더 나아가 이러한 일종의 ‘미봉책’이 아닌 H-1B 비자 대상에 한국인 쿼터를 설정하거나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 적용되는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의 별도 E-4 비자 신설을 요구해왔다.
외교 당국 관계자는 미 이민 당국의 이번 결정에 대한 본지의 질의에 “한국인 근로자들의 비자 발급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면밀히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지아 사태 이후 정부는 미국과 한국 전용의 별도 비자 신설을 위한 입법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며 “H-1B 비자와 관련해선 한국인 쿼터를 설치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제시됐지만 이번 결정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도 확인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