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 정부의 정책 실패로 넘겨준 '바다의 파이프라인', 이제라도 지켜내야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 시계가 위험을 알리고 있다. 최근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IMM 컨소시엄이 현대LNG해운을 인도네시아의 시나르마스 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정부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매각 추정가는 약 3조 8천억 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등 국가 주요 전략물자를 수송하는 다른 선사들 역시 외국 자본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우리는 먼저 왜 우리의 핵심 에너지 수송 선사들이 사모펀드의 손을 거쳐 외국 자본에 넘겨질 위기에 처했는지, 그 뼈아픈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기인한다. 과거 정부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한 장치 산업인 해운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부채비율 200%라는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해운사들은 알짜 사업부인 LNG와 전용선 사업부를 사모펀드에 매각해야 했고, 한진해운 파산이라는 해운업계의 비극을 초래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 국가 물류의 동맥을 스스로 끊어낸 셈이다.
사모펀드가 대주주로 있는 동안 이들 선사의 덩치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은 인수 당시에 비해 선대 규모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같은 성장도 가스공사, 발전사, 포스코 등 국내 주요 화주들과 장기운송계약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모펀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수익 극대화’와 ‘투자금 회수’다. 이미 한앤컴퍼니는 에이치라인해운으로부터 수천억 원의 배당금을 챙기며 충분한 수익을 거두었다. 이제 그들은 국익보다는 더 비싼 값을 부르는 외국 자본에 '엑시트(Exit)'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일부 사모펀드 소유 선사들이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행보 또한 석연치 않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곧 다가올 외국 매각 승인 과정에서 정부와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고 승인을 용이하게 하려는 고도의 ‘명분 쌓기’용 포석이 아니냐는 완곡한 우려를 제기한다.
만약 현대LNG해운을 시작으로 국적 선사들이 줄줄이 외국 자본에 넘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에너지 안보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LNG, 원유 등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 물자다. 1990년 걸프전 당시 외국 선사들이 전쟁 위험을 피해 운항을 거부할 때 우리 원유를 실어 나른 것은 국적 선사들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글로벌 물류 대란 속에서 ‘코리아 패싱’을 막고 수출 기업의 숨통을 틔워준 것 역시 우리 선사들이었다.
소유권이 외국으로 넘어가면 위기 상황에서의 통제권을 상실한다. 외국 자본은 대한민국의 안보보다 자국의 이익이나 더 높은 운임이 보장되는 항로를 우선할 것이 자명하다.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국가필수국제선박’ 지정 제도 역시 선주가 외국인이라면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LNG(38%), 원유(50%) 등 주요 전략 물자의 국적선 적취율이 낮은 상황에서, 핵심 선대마저 잃는다면 우리는 에너지 위기 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국수국운(國手國運)’을 내세워 CSSC(중국선박공업) 등 국영 조선소에서 배를 짓고, COSCO(국영 선사)가 운송하는 비율을 2025년까지 70~8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에너지 수송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 역시 상사와 국적 선사(MOL, NYK, K-Line)가 정부를 매개로 연계하여 전체 수입 물량의 거의 100%에 관여하여 자국 에너지 안보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세계 각국이 에너지 공급망을 안보 자산으로 격상시키는 마당에, 한국만 거꾸로 이를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정부는 이번 현대LNG해운의 매각 승인 심사를 단순히 기업 결합의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단순한 M&A가 아니다. 국내 LNG 수입의 30%를 책임지는 23척의 국가 전략 선대가 통째로 넘어가는 사건이다. 사모펀드의 이익 실현을 위해 국가의 생명줄인 에너지 안보를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과거의 정책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전략물자 수송 선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공공 부문의 역할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야 한다. 바다를 잃으면 미래도 없다. 에너지 안보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본 기사의 내용은 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의 견해이며 중앙일보사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둡니다.